INSIDE PEOPLE  l  No.15


김오키 Kim Oki

색소포니스트, 뮤지션




다재다능, 천부적 재주꾼 김오키

그가 그림 그리듯 펼쳐놓은

지극히 ‘오키스러운’ 이야기.






CHAPTER 1

음악



#포효하는_연주 #머릿속_빅픽쳐 #밴드마스터


D 만나뵙게 되어 반갑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반갑습니다. 제 이름은 김오키라고 하고요, 마포구 성산동에 살고 있고요. 곧 이사를 갈 예정입니다. 

(어디로요?) 아직 모르겠어요. 동네 근처로 갈까 해요. 아무튼, 음악 하고 있는 김오키입니다. (웃음)


D 앨범을 많이 냈다. 싱글, EP 등을 포함하여 총 열다섯 개, 팀으로 발매한 건 네 개. 

어떻게 이렇게 쉬지 않고 작업할 수 있는지 대단하다. 

팀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것 같아요. 멤버가 정해져 있는 팀들은 서로 조율을 해야 되고, 누군가가 여러 명의 의견을 추려내야 하잖아요. 저는 제 맘대로 해야 되는데. (모두 웃음) 그래서 저는 고용하는 입장으로 하는 거죠. 음악을 다 만들고 나서 ‘연주를 네가 해줘’ 이런 거니까 오히려 편하게 작업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D 다작의 비결은?

비결이랄 게 없고… 음악 하는 사람, 사실 시간 많아요. 할 게 없잖아요? 그럼 곡 만드는 거죠. 만들어서 내고, 만들었으니까 또 내고. 그렇게 하다 보면 앨범 만드는 데 길게는 육 개월, 짧게는 2주 정도 걸리죠. 오늘부터 딱 집중해서 하면 미니멈 2주예요. 근데 지금은 유통사한테 조금 미안해서...

[사진] 김오키 디스코그래피 (클릭하면 해당 페이지로 이동). 출처 : 네이버바이브

D 왜요?

하도 자주 내니까. 자제하고 있습니다. (모두 웃음) 새로운 것도 있으면 좋지만, 너무 자주 하다 보면 곡 만드는 게 재미없어지기도 하고요. 앨범을 많이 낼 때는 일 년에 세 장씩 발매하고 했는데 지금은 일 년에 한두 장 정도만 내요. 다음 앨범을 내기까지의 소요 시간을 맥시멈 육 개월로 잡는 건 작업 속도 때문에 그러는 건 아니고요. 보통 청취자가 같은 곡을 육 개월 정도 들으면 안 듣더라고요. 그럼 다음 신제품을 내야 ‘아, 김오키가 새로운 곡을 냈구나’ 하면서 또 듣잖아요. 그래서 그렇게 해보는 거죠.



D 청취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다니. 저라면 ‘나는 더 완벽한 걸 내보낼 테야’ 이러면서 못할 것 같은데.

이게 조언 아닌 조언인데, 세상에 그런 앨범은 없는 것 같아요. 앨범을 잘 안 내는 이유 중 하나로 ‘나는 이렇게 죽이는 거 해야지’ 생각해서 미뤄지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절대 못 만들어요. 하하. 어떻게 만들 거야. 그건 나를 너무 과대평가하는 거지. 그래서 저는 정말 러프하게 내요. 하루에 녹음을 만약에… 한 프로(*3시간~3시간 30분), 두 프로. 짧으면 한 프로, 길게 하면 두 프로에 열 곡을 녹음하고, 바로 믹스해서 내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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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주로 협업하는 핵심 멤버들(피아니스트 진수영, 베이시스트 전제곤/정수민 등)이 있다. 어떤 계기로 함께 작업하게 되었는지.

재즈 긱을 하다 만났어요. ‘서로가 맘에 드니까 다음에 같이 뭐라도 하자’ 이런 식으로요. 재즈 하는 사람들의 문화는 유연한 편이에요. 고정적인 팀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개인개인이 모여요. 메인 호스트가 그때그때 사람을 모으죠. 다들 리더, 호스트의 마음을 사기 위해서 악기로 별의 별 표현을 다 하고요. 갖고 있는 걸 다 보여줘야 일이 많이 들어와요. 스스로를 뽐내지 못하면 망하는 거예요. 그냥 집에 가야 돼요. 하하. 그래서 별 지랄(?)을 다 해요. 잔인하죠. 어떻게 해서든 리더 맘에 들기 위해서 멋지게 해요. 그래야 연주할 때 재밌기도 하고요.

D 재즈 긱, 멤버를 넣고 빼고가 자유롭다. 만약 잘리면?

그냥 잘리는 거죠. (웃음) 근데 뭐 어쩔 수 없지. 어떡해. 누군가는 물론 삐지기도 해요. 저도 삐진(?) 경험이 많았어요. 음악 인생 초반에요. 울기도 많이 울고 했는데 어떤 면에서는 좋은 것 같아요. 도움이 많이 됐죠. 더 연습하게 되고, 내가 나에 대해서 소홀했구나 하면서 되돌아보기도 하고. 2009년, 2010년 즈음이었나. 한번은 호텔에 연주하러 갔는데, 그냥 내 기분이 되게 안 좋은 것 있잖아요? 아, 연주를 잔뜩 망친 것 같다. 그런 건 남한테 무슨 얘기를 듣지 않아도 스스로 알거든요. 연주하고서 주차장을 걸어 내려오는데 열이 받아서 눈물이 나는 거예요. 집에 와서는 꿈에서 울고요. 그러곤 ‘다시는 내가 이런 엉망인 연주 안 한다’ 했죠.


D 음악을 아주 스파르타로 하셨네요?

그렇게 해야죠. 만약 잘렸을 때 자기가 진짜 뮤지션이다 하면 엄청 연습할 것 같아요. 그래서 끼를 보여주든가, 아니면 다른 밴드를 만들어서 더 멋있게 하든가. 아무튼 그러다가 만났습니다. 그래서 오래 함께할 수 있는 거 같아요. 콧대 높은 연주자들끼리 니가 잘났니 내가 잘났니 싸우고 또 나중에 삐져서 안 보고, 이런 건 싫잖아요. 한 명이 만들어서 ‘할 거면 하고, 아니면 나가’ 하니까 (오히려 좋아요). 그래서 언제 잘릴 지 몰라요. 하하. 이번주에 공연하고 다음주에 안 부르면 안 하는 거예요. 



D 팀으로 할 때도 큰 그림이 머릿속에 정해져 있나?

‘뻐킹 매드니스’ 멤버가 다 모이면 열두 명이란 말이죠. 보통 연주할 때는 일곱 명을 추려서 하는데, 지금 여기서 이 악기가 연주, 요 악기는 그만, 이젠 둘이 들어와, 지금 멈춰. 이걸 연주하는 동안 제가 지시해요. 멤버들도 이런 작업 방식에 익숙하기도 하고, 한 명이 리드해서 가는 걸 더 좋아하기도 하고요.

[사진] 뻐킹 매드니스 Fucking Madness 리허설

D 12인조 밴드 ‘뻐킹 매드니스

Fucking Madness’의 시작은?

열두 명은 머릿속에 미리 계획을 했어요. 4년짜리 계획이었죠. 2014년에 ‘열두 명 해야지’ 하고 시작해서 2017년에 앨범을 냈어요. 저의 계획에 맞게 여러 명과 함께 합주를 해봤죠. 어느날 다 모였는데 열두 명인 거예요. 드럼 둘, 베이스 둘, 관악기 연주자 여럿이 합주를 한 번도 안 했는데, 서로 너무 잘 맞더라고요. 그래서 저희는 합주를 안 해요.



D 그렇게 되기까지 8년이 걸린 거네요?

8년인가? 지금 몇 년도죠? (웃음) 오래됐네. 극초반에 있던 멤버가 지금까지 있는 사람은 한 명뿐이 없고, 계속 바뀌었죠. 여러 사람과 연주해보고 누군가가 맘에 들면 살짝 마음에 찜해 뒀다가 다음에 또 같이 하고 이렇게요. 하하.



D 열 명 넘는 인원, 작업이 쉽지 않을 거라 상상되는데.

멤버들에게 제가 원하는 느낌을 말해요. 예를 들어서 피아노 트리오다, 새턴발라드라고 하면 ‘A구간은 발라드로 갔다가 B구간에서 레게로 갔다가 느려지면서 C구간에서 다시 올라오자’고 말하면 기가 막히게 착착착 해줘요. 다들 아주 최적화돼 있는 사람들이에요. 베이스가 힙합 리프를 치면서 들어오자, 하면 그냥 바로 하고요. 그게 안 되면 잘리는 거죠. (모두 웃음) 왜 안 되냐, 를 묻는 게 아니라 실현이 안 되면 다른 사람이랑 하는 거예요. (무척 쿨하네요?) 굳이 싸울 필요 없잖아요. 그래서 저희는 합주는 스킵하고, 공연장마다 소리가 다 다르잖아요. 사운드 시스템이 다 다르니까 거기서 최적의 소리를 내는 걸 목표로 하죠. 



D 뻐킹매드니스는 몸집이 큰 밴드인데 리허설 시간이 짧아서 놀랐다.

리허설을 오래 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해요. 힘들기도 하고, 리허설은 그 장소에서 소리가 어떻게 나한테 들어오는지 듣고 거기에 익숙해지는 시간이어야만 된다고 생각해요. 리허설 사운드에 몸을 익게 해주는 거죠. 스스로 소리를 들었을 때 이상하다고 해서 관객들이 듣는 것도 이상하진 않아요. 무대 밖에서는 또 다르거든요. 그리고 하나하나 곡을 맞춰보고 이러는 건, 그건 좀 아닌 것 같고. 연습은 연습실에서 하는 거니까. 하하.


CHAPTER 2

사랑


#사랑꾼 #순정파 #내_사랑에겐_따뜻하겠지


D 새로 나온 정규 14집 <안부>를 소개한다면?

‘안부’는 편지 같은 거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앨범 제작 과정에서의 제 감정은, 날씨를 보니까 꽃도 피고 봄이 오더라고요. 그래서 ‘사랑했던 사람들한테 편지를 써야겠다’, ‘편지를 그 사람이 직접 볼 순 없지만 음악으로 만들면 전해지지 않을까’ 하는 심플하고 개인적인 감정으로 작업했어요. 




의미 없이 깨어나서 의미 있는 하루를 보내려고 노력 아닌 노력을 해봤어.

나에게는 저 멀리 어쩌면 너에게는 더 가까이 빛나는 달을 보며 그 빛을 전하고픈 너를 떠올리기도 했고

안녕이라고 다시 안녕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달빛 사이로 작게나마 보이는 너의 별에게 그리고 너에게 오늘은 어땠나 묻고 싶다.

나도 너의 별로 가고 싶은 맘들을 담아두며 우리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며 내일도 잘 보내려고 다짐을 한다.

모든 것이 부질없는 일임을 알면서도 말이야.


추신: 오늘 걷다가 고개를 들어 보니까 벚꽃이 활짝 폈더라. 그 아래에서 너의 노래를 들으며 피지 않던 담배를 피워 봤어.


(▴<안부(2022)> 소개글)


D ‘사랑’이 김오키의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아이덴티티라고 말했다. 어느 순간부터 사랑을 표현하게 됐나? 그 계기?
나이가 좀 들면서 그냥 자연스럽게 달라진 것 같아요. 제가 어릴 때, 패기 넘칠 때는 사회 문제에 대해 많이 분노했어요. 그런 분노의 감정들로 곡을 만들고요. 음악으로 ‘화’를 낸 거죠. 그런데 나중에 돌아보니 스스로 좀 창피하더라고요. 화냈던 게 창피해질 때가 있는 것처럼요. 제 초반 앨범을 들어보면 완전 다르거든요. 음악이 확 바뀌는 시기가 있는데 그때부터는 사회 문제는 좀 뒤로 제쳐두고 개인적인 경험들을 담았어요. 보고 느끼는 것들 위주로 곡을 만들었죠. 사랑이 핵심 아이덴티티인 이유는… 사랑의 모습들을 전부 다 음악으로 만들어내고 싶은 욕구가 있어요. 사랑에 대한 곡을 만들 때 에너지도 많이 생기고, 다양한 생각들이 나서 좋아요. 누군가를 사랑하는 감정이 있잖아요, 그럼 내가 할 줄 아는 게 음악이니까 그 사람한테 음악을 해주고 싶은 거예요. 그런 마인드?



D 낭만적이다. 기억이 안 날 수도 있겠지만, 앨범 2~3장 정도만 작곡 에피소드를 물어봐도 되겠나?

아, 정확하게 다 기억하죠. 그런데 이 질문엔 대답할 수 없어요. 하하. 옛날엔 인터뷰에서 곡에 대한 디테일을 다 얘기했는데, 저도 새로 연애를 해야 되잖아요. (모두 웃음) 새로운 사랑을 하게 되면 애인이 당연히 제 인터뷰를 찾아보는데, 과거의 일을 자세히 언급하게 되면 미안하더라고요. <안부(2022)>는 아까 이야기했으니까 <스트레인지, 트루 뷰티(2021)>, <새턴메디테이션(2018)> 정도만 간략하게 이야기해 드릴게요. <스트레인지, 트루 뷰티>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첫 만남부터 시작해 그 다음의 일련의 사건들이 쭉 진행되는 앨범이에요. ‘첫 만남’의 느낌을 담은 곡도 있고, ‘그네’는 실제로 그네 타던 추억을 곡으로 표현한 곡이고요. 별 것 없고, 다 ‘그때의 사랑 이야기들’이죠. 거기엔 미래에 발매될 제 영화의 OST도 미리 넣어놨으니 기대해 주세요. 


<새턴메디테이션>에는 ‘점도면에서 최대의 사랑’이라는 곡’이 있어요. 그건 제목 그대로 ‘엄청 사랑하는’ 경험의 표현이에요. 사랑하는 사람이 제 옆에서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고 곡을 만들었어요. 그냥 사랑하는 사람이 제 옆에만 있어도 곡이 나오는데 어떡해요? (모두 웃음) (소위 말하는 ‘뮤즈’?) 그렇죠. 사랑하는 감정을 노래로 표현하니까. 곡의 90%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만들어요.

D 평소에도 ‘사랑하자’는 얘기를 많이 하는데, 포괄적인 의미의 사랑보다는 ‘특정한 사람을 사랑하자’, 이런 느낌인 건가? 

네. ‘사랑의 대상을 정해서 애정을 쏟자’. 한 명만 사랑할 수 있을 때의 그 에너지와 행복감이 있잖아요? 저는 그런 순수한 사랑의 모습이 좋아서 제 입장을 음악으로 얘기하는 거예요. 예컨대 사람 둘이 사랑을 할 때는요, 순애보 사랑, 미친듯이 한 명만 사랑한다… 뭐 그런 거 있잖아요. 사랑하고 다투고, 이별의 과정을 겪고, 또 다른 사람과 정말 미친 듯 사랑하고 하는 것들요. ‘사랑을 그렇게 해보면 어떻겠냐’, 이런 얘기죠. 



D 솔직한 대답을 기대한다. 그렇게 대상이나 영감을 주는 사람이 정해져 있다 보면, 그걸 느끼지 못하는 순간에는 영감을 받지 못하나? 

네. 그렇습니다. (웃음) 저는 감정을 느껴야 곡을 만들어요. 천재가 아니라서, 음악을 만들 때 계산적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서요. 멜로디 같은 것들도 억지로 만들려고 하는 게 아니라, 엄청 사랑할 때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쓰듯이 감성적이 된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하는 게 잘 나와요. 



D 그런 것치고는 앨범이 아주 꾸준하게 나오는데?

아니, 잠시만. (모두 폭소) 아니, 앨범이 만약 여섯 개잖아요. 그럼 그 주인공이 모두 한 인물일 수도 있잖아요! 하하. 음… 돌아보면 연애를 안 한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저에게는 뮤지션으로서 사랑이 아주 중요하죠. 개인적으로는 혼자 지내도 크게 지장은 없어요. 근데 사랑하면 좋잖아요? 에버랜드도 같이 가고. 요새 놀이공원에 가고 싶어 죽겠네요. 사랑하는 사람과 놀러 같이 가면 참 얼마나 좋아요. 



D 사랑을 표현하기에 다양한 감정이 있는데도, 대부분의 곡이 차분하고 우울한데.

맞아요. 원체 우울하고 슬픈 걸 좋아해요. 슬픈 영화도 개인적으로 좋아하고, 우울한 걸 꽤나 좋아하는 것 같아요.


CHAPTER 3

표현


#텍스처메이커 #완벽주의자 #INF(T)P 

D 음악 작곡 방식은?

먼저 아이디어나 테마를 간단히 만들어놔요. 미디로 스케치를 미리 만들어놓고, 그걸 들으면서 이걸 리얼 악기로 할 건지, 아니면 이 사운드를 다시 만지고 다른 것들을 추가할 건지 고민하는 거죠. 그리고 악기를 녹음하죠. 이전에 녹음해뒀던 소리에 나중에 살을 붙여서 곡을 만들기도 하고요.



D 작업하다 보면 나중에 스스로 맘에 안 드는 곡도 있나?

녹음을 다 해놓고 제 마음에 안 들어서 안 낸 게 정규 두 장 정도 있어요. 그것들은 그냥 버렸어요. 녹음을 해놓고 제가 믹스를 하니까, 요즘엔 완전히 다 바꾸는 경우도 있어요. 연주자가 녹음을 하면 나중에 그걸 다 잘라서 성형수술(?)을 하기도 해요. 트랙을 빼버리거나 연주자를 바꿔서 다시 녹음한다거나 할 때도 있고요. 



D 곡을 들으면 질감적인 부분이 크게 와 닿는다.

톤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색소폰이든, 드럼의 스네어든 림이든, 악기들의 질감을 엄청나게 신경쓰고 만지거든요. 악기 녹음을 하고 나면 계속 믹스를 하면서 소리를 만지죠. 별로 맘에 안 들면 계속 다른 소리를 섞어서 만들기도 하고요. 또 저는 로파이한 걸 좋아해서 옛날 ‘그때 그 시절의 소리’ 이런 걸 담고 싶어 해요. 턴테이블이나, 테이프 느낌의 소리라든가, TV 채널 노브를 돌릴 때마다 지지직거리는 노이즈가 살짝 있는 거, 그런 걸 좋아하고 익숙해하다 보니 텍스처에서도 로파이한 감성이 나타나는 것 같아요.



D 특별한 소리를 내고 싶어하는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작업 방식은?

저는 별 짓 다 해요. 집안에 있는 온갖 걸 다 두드려 보죠. 소리를 찾고, 섞어서 들어보고, 합쳐도 보고 해요. 여러 가지 소리를 뒤집기도 하고 자르기도 하고 해서 계속 레이어를 쌓아요. 노래도 한 번 부른 것에 뒤에다 화음을 쌓거나 계속 변형을 해서 부르면 더 좋게 들리거든요. 그런 느낌으로 소리를 쌓아서 만들어요. 마지막에 들었을 때는 여러 개를 쌓은 게 아니라 마치 원래 하나인 것처럼 느껴지도록, 그렇게 들릴 때까지 많이 만지죠. 음악은 아이패드로 주로 만들고 개러지밴드를 써요. 



D 내가 원하는 톤을 연주자들에게 어떻게 납득시키는지?

얘길 하죠. 베이스 톤이 이렇게 되면 좋겠다. 근데 앰프가 안 좋은 건가? 줄을 이상한 걸 쓰나 보네, 하면서. 하하. 농담이고요. 같이 음악하는 친구들이랑 취향이 비슷하다 보니까 비슷한 소리를 좋아하기도 하고, 센스가 좋은 사람들이다 보니 다들 제가 원하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어요.


CHAPTER 4


#평화주의자 #샤갈의_그림 #웹툰_덕후 


D 김오키에겐 야생적인 포스가 있다. 댄서를 하기도 했고, 몸을 이용하는 것은 다 잘할 것 같다. 어린시절 운동도 혹은 싸움도 잘 했을 것 같다. 

으하하. 제 겉모습이 러프해서 터프 가이처럼 보시는 분들도 있어요. 싸우면 안 되죠.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어요. (웃음) 저는 어릴 때도 안 싸웠어요. 딱 한 번 싸운 건, 국사 시간에 어떤 애가 제 여자친구를 욕하는 거예요. 그래서 밖에 끌고 나와서 한판 했죠. 하하. 그것 외엔 친구들이랑 다 친하게 지냈어요. 근데 예전에 제가 춤 출 때는 좀 맞았어요. 96, 97년 이럴 때는 시대가 지금보다 미개(?)했잖아요. 엘리트 코스가 아닌 이상은 맞으면서 배우기도 했고, 옛날 군대식으로 배우기도 했으니까요. 선후배 관계가 좀 군기잡혀 있었죠. 



D 앨범 커버들도 인상적인데, 즉흥적으로 고르나? 

앨범 커버는 즉흥적으로 작업해요. 엄청나게 완전 제 맘에 쏙 들지 않을 거면, 그때그때 되는 걸로 가요. 하하. ‘스트레인지, 트루 뷰티’는 앨범을 발매하고 나서 사진을 새로 찍었어요. 지금 표지는 나중에 바꾼 거고요. 제가 옛날에 1, 2집 할 때는 다 엄청 계획하고 했고요. 노래랑 커버가 정확하게 맞게. 앨범 표지를 보면 곡들이 다 들어있게 했어요. 요즘엔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고요. (그림도 그리세요?) 안 그려요. 이번 앨범 커버 아트는 제가 그렸는데, 각 잡고 그릴 건 아닌 것 같아요. 어우. 하하. 그림은 너무 좋아하지만, 미술은 손 대면 안 돼요.  



D 좋아하는 미술 작가?

샤갈. 그리고 오윤 판화 작가님 그림도 좋아하고요. 옛날엔 프리다 칼로, 이런 작가들을 되게 좋아했어요. 근데 또 시간이 지나니까 취향이 바뀌네요. 샤갈은 미술관에서 봤는데, 한 그림만 몇 시간을 본 거 같아요. 기가 막히더라고요. 눈물이 날 정도로. 막 그냥 지나가기가 아깝거든요. 샤갈 그림은 그거였어요. 이름은 기억이 안 나는데 빨간 색이었고, 사람이 염소 같은 거랑 이렇게 서 있는 거. 그래서 샤갈 그림책도 샀어요. 그리고 고故 윤형근 화백, 한국의 마크 로스코라고 불리는 분이 있는데요. 그분 건, 갤러리에서 그림을 주제로 음악을 만들어달라고 해서 갔어요. 처음엔 자료만 받았는데 시꺼먼 게 엄청 비싸더라고요? 아… 그림을 실제로 봤더니 기가 막혀요. 까만 색이 그냥 까만 색이 아니에요. 시간이 흘러서 물감 색깔이 어떻게 변할지까지 계산해서 그림을 그리셨더라고요. 장난이 아니었어요. 정말 압도됐죠.

D 당신의 하루는 대략적으로 어떻게 돌아가는가?

미팅 등 일이 있는 날은 일을 하고요, 일이 없는 날에 몸을 일으키는 건 오후 12시쯤? 배달 어플로 점심밥을 시키고, 밥이 오는 동안 플레이스테이션으로 배틀그라운드를 해요. 밥 먹을 때는 영화 보고, 영화가 재밌으면 끝까지 보고, 재미없으면 다시 게임하고. 영화 보면 또 졸리거든요? 그럼 또 살짝 웹툰 보면서 한 시간 정도 자다가 배달 어플로 또 저녁을 시켜 먹으면서… (끼니를 다 시켜 드시네요?) 네. 요새 집에서 요리를 하는 걸 너무 싫어해서요. 아무튼 저녁 먹으면서 또 배틀그라운드 하고. 하하. 게임하다 보면 시간이 어느 순간 새벽 두 시, 막 이래요. 졸릴 때까지 게임하다가 좀 졸리다, 그러면 이불 딱 깔고 불 끄고 웹툰 보면서 자요. (모두 폭소)



D 음악하는 시간이 아예 없는데요?

공연을 하잖아요. (웃음) 예전에는 연습을 많이 했죠. 요새는 많이 하지는 않고요. ‘노래나 잘 만들자’ 하는 생각이에요. 음악은 공연을 하면 그게 음악 작업이고요. 또 요샌 피튀기게 일해서 뭐 하나 싶어서 연주할 때도 뒤에 살짝 빠져 있네요. 뻐킹 매드니스 공연을 하면 사람들이 많으니까, 다들 솔로 하라고 하고 전 감상하면서 놀아요. 듣고 즐기고.



D 만화를 즐겨 보는지? 

즐겨 봐요. 엄청 좋아해요. 카카오, 네이버 웹툰을 제가… 합쳐서 한 70개를 봐요. 하하. 하루를 밀리면 70개가 밀리죠. (네? 거의 일이네요?) 또 재밌는 건 일부러 안 봐요. 완결될 때까지 기다려요. 그 짓(?)을 하다 보니까 이렇게 됐어요. 주동근 작가라고 있거든요, ‘지금 우리 학교는’ 그린 분인데 요샌 ‘아도나이’가 너무 재밌어서 완결을 기다리다 ‘또 뭘 볼까’ 하면서 재밌는 걸 발견하고, ‘이것도 완결 날 때까지 보지 말아야겠다…’ 하면서 다른 걸 보다가 또 거기 꽂혀서 그것도 완결 날 때까지 기다리고… 푸하하. 웹툰은 음악 하는 데도, 영화 하는 데도 도움이 정말 많이 돼요.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데 도움이 되죠. 



D 웹툰 OST 작업도 많이 하나? 

몇 번 했어요. 이번 앨범 ‘안부’에는 곡별로 웹툰 작가들이 한 편씩 만화를 그리기로 했어요. 그걸 모아서 책으로도 같이 나와요. 기대해 주세요. (인생 웹툰은?) ‘세상속으로’, ‘시동’. 조금산 작가 건 다 좋아해요. 그리고 마영신 작가, 주동근 작가 것도 좋아하고요. 요즘에는 ‘광장’(오세형/김근태 작). 느와르 웹툰을 좋아해요. 고독한 거. (책은요?) 책은 엄청 자주, 많이 봤는데 음악을 하면서부터 안 봤어요. 이상하게 책이 방해가 되더라고요. 시간을 오래 들여서 읽어야 되는데, 그 시간에 연습을 하는 게 더 좋았어요.


[MV] 김오키 (Kim Oki) - 이겨내는 것들 (Stuff to Overcome) (feat. 우원재 (Woo))

D 김오키를 보면 ‘자유롭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생각하나?

책임 있는 자유가 좋아요. 사람들이 저를 볼 때 자유로워 보일 수 있지만 저는 아주 보수적이고 계획적으로 살아요. 요새는 틀에 맞춰 사는 게 너무 심하다 보니까 안 그러려고 일부러 하루 종일 누워있기도 하고, 게임만 하루종일 하기도 해요. 압박감에서 벗어나려고요. 



D 계획적인 나의 모습엔 어떤 게 있나?

예를 들어 오늘 인터뷰하러 오기로 했잖아요? 그럼 그게 아침부터 엄청 신경 쓰여요. 그걸 하기 위한 컨디션 조절도 해야 되고, ‘몇 시에 출발해서 몇 시에 뭘 타고 가서 몇 시까지 뭘 하면 딱 좋겠다’ 해요. 또 앨범 낸다고 그러면 사실 막 내는 것 같지만, ‘이건 예스고, 이게 안 되면 다른 거 요거, 요거 안 되면 저거’. 그런 식으로 모든 걸 다 생각해 놔요. 먼저 다 만들어놓고 저는 뒤에서 부리는 거죠... 하하.



D MBTI는?

INFP와 INTP 반반이요. 멤버들은 거의 다 INFP고요. 근데 제가 술 먹고 MBTI를 해 봤는데, 하하. 집으로 걸어가면서 해봤는데 완전 달라요. E, S, T… 제가 술을 마시면 말이 많아지거든요. 낯도 안 가리고, 사교성도 좋아지고 그렇습니다.



D 슬리퍼 차림의 사진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슬리퍼를 좋아하나?

네. 편하고, 좋더라고요. 발 내놓는 걸 엄청 좋아해요. 공연하러 폴란드에 간 적이 있어요. 폴란드에 가려면 러시아에서 비행기를 갈아타야 되거든요. 제가 방송을 나가든 갤러리를 가든 한창 슬리퍼만 신고 다닐 때였어요. 비행기를 놓쳐서 러시아 공항 주변에 있어야 됐는데, 눈이 엄청 오는 거예요. 슬리퍼를 신고 반팔에 후드티 하나 입고, 색소폰 가방을 메고 눈 오는 붉은광장을 걸어가는데… 러시아 사람들이 다 이상하게 쳐다보더라고요? 군대에서 혹한기 훈련할 때도 발은 내놓고 잤어요. 열이 많나 봐요. 친구들은 발을 제일 아파했는데 저는 괜찮더라고요. 근데 붉은광장에선 저도 추웠어요. 

D 음악 디깅 방법? 

카페 같은 데 앉아 있으면 음악이 나오잖아요. 그럼 좋은 것들이 있거든요. 귀에 꽂히는 게 있으면 찾아봐요. 청하의 발라드도 귀에 꽂힌 적이 있어요. 그리고 ‘사운즈굿’이라고 연남동 LP샵이 있어요. 거기 인스타그램을 보면 노래랑 같이 해서 음반 홍보를 하거든요. 그런 콘텐츠들을 찾아보고 좋은 게 있으면 계속 들어요.

CHAPTER 5

영화


#씨네필 #오키의영화 #느와르가_좋아



D 최근 음악에서 영화로까지 확장적 시도를 하게 되었다. <다리 밑에 까뽀에라> 등.

네. 단편을 두 개 찍었어요. 작년에 찍은 건 작년에 상영을 한 번 했고, 올해에도 찍은 게 있거든요. 어릴 적부터 영화를 좋아했고, 스무 살 때쯤부터 캠코더로 영화를 찍기도 했어요. 저는 음악 만들 때도 스토리를 먼저 만들어놓고 음악을 만들거든요? 영화를 만들어본 건 스스로 ‘스토리를 청각화하기도 하니까 스토리를 시각화해보면 좋겠다’ 하는 생각에서 한 시도였죠. 편집도 제가 해요. 똑같잖아요. 화면만 있다 뿐이지, 자르고 붙이고 하는 건 음악 만들 때랑 똑같아요. (스토리를 모두 짜놓는지, 혹은 즉흥적으로?) 영화는 완전히 플롯을 짜놓고 해요. 정석대로. 


D ‘사랑’ MV는 누가 편집했나? 

영화 ‘경주’ OST가 ‘사랑’인데 감독님한테 제가 말했죠. 뮤직비디오에 영화 장면을 쓰고 싶다고. 장률 감독님을 되게 좋아해서요. 배우도 좋아하는 분이고요. 아무튼 제가 그렇게 말했더니 감독님과 제작사, 배우 분들이 전부 흔쾌히 승낙하셔서 영화 장면을 쓸 수 있게 됐어요. 감독님이 찍은 걸 제가 편집했어요. 저는 그냥 잘라서 붙이기만 했는데 좋더라고요. 


D 좋아하는 영화?

총 네 개를 추천해 드릴게요. 그중 한 개는 살짝 바뀌긴 하는데 일단은 <Her>요. 스파이크 존즈 감독을 좋아해요. 또 <무드 인디고>(미셸 공드리 감독), <레옹>(뤽 베송 감독), 주성치의 <희극지왕>, 아니면 <번지 점프를 하다(김대승 감독)>. 이것들이 저의 인생 영화들이죠. 진지하긴 한데 멋있는 척 하는 건 싫어요. 웃긴 거 좋잖아요.




D 어떤 영화 작품을 만들 생각인가?

장편, 내용은 비밀. 크게 상영해보고 싶은, 최종적으로 찍고 싶은 영화는 느와르예요. 진지한 걸 좋아하는데 잘 못 해서 문제예요. 민망해서요. 코믹적 요소가 없는 완전한 느와르를 하기 위해서 단편도 찍고 장편도 찍고, 연습하고 있어요. 



D 이번에 찍은 영화는 제목이?

<연쇄사랑범 보라스>요. 전제곤 씨가 연기를 기가 막히게 하거든요. 내용은 비밀이지만 장르는 코믹 스릴러예요. 본 사람들이 섬뜩하다더라고요. (모두 웃음) 촬영과 편집을 거의 다 했고, 조금씩 수정하고 있어요. 영화제에 냈는데 안 되면 말고요. 에무 시네마에서 상영회를 한번 할 거예요. 아주 큰 데서 상영해보고 싶기도 한데 배급을 안 했네요. 가을부터는 장편영화에 들어가요. 60분 이상 짜리요.


[영상] 아티스트 김오키 X PER 의 가을선물



D 내년 계획은?

내년 계획이요? 한치 앞도 모르는데? 지금도 골치 아픈데 무슨 내년이에요. 전 내년까지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올해 계획은 뭐 영화죠. 장편 찍는 거. 장편 촬영은 올해 끝날 것 같아요. 



D 김오키에게 ‘성공’이란 어떤 의미인가.

성공은… 연남동에 빌딩 하나. 하하. 아니, 한 세 개 올려야 되는데. 사고 싶다, 건물. (돈을 많이 벌면 뭘 하고 싶은지?) 음. 영화를 편하게 찍겠죠?



D 좌우명 혹은 생활 신조가 있다면?

돈 많이 벌자. 제 예명 중 하나가 돈만스키인데 그게 ‘돈, 만, 좋다’ 해서 돈만스키거든요. (돈만스키의 러시아 컨셉, 특별한 이유는?) 제가 어릴 때 캐릭터를 하나 그렸는데, 캐릭터에 이름을 지어 줘야 되잖아요. 제가 ‘알렉산더’ 어쩌고 저쩌고 이렇게 이름을 지었는데 친구가 ‘이 캐릭터의 탄생은 일본과 러시아 혼혈…’ 이러면서 그 밑에 부연설명을 썼어요. 재밌더라고요. 그래서 거기서부터 제 컨셉이 시작됐죠. 

D 디깅에서 인터뷰를 해줬으면 하는 사람이 있나? 

전제곤 씨요. 그분은 앨범도 없고 할 줄 아는 게 베이스뿐이 없으니까. (웃음) 아, 연기를 잘해서 제 배우로 섭외를 했죠. 그리고 마영신 작가요. 아마 인터뷰해 주실 것 같은데요. 한국 만화계의 봉준호죠. ‘엄마들’이 만화계의 오스카 상 ‘하비 상’에 선정됐죠. ‘아티스트’, ‘엄마들’이란 작품을 추천해요. 


D 끝으로 디깅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

독자님들 뭘 하든 건강하시고, 건강이 최고니까요. 그리고 예의범절. 예의범절을 잘 지켜주시고, 그다음에 사랑. 사랑할 수 있으면 많이 하시고요. 또 돈 많이 버시고요. 돈 많이 벌면 저도 좀만 주시고. 푸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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