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단편소설] 전자음악의 마법사 - 오용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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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음악의 마법사 (Electronic Music Wizard)



 

1장. 음악천재 김신도

 

  신도는 특이하게도 스물두 살 이전의 기억이 없다. 그의 기억은 어느 상가의 차가운 복도 바닥에 엎어진 채로 눈을 뜬 데서부터 출발한다. 비틀거리며 주위를 둘러보니 복층으로 이루어진 커다란 상가 내부에는 온통 악기점뿐이었다. 신도는 나중에야 그곳이 낙원상가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도대체 왜 낙원상가 바닥에 엎어져 있었던가, 신도는 기억이 안 났지만 나중에 그의 이야기를 들은 공장 동료들이 입을 모아 내놓은 한 가지 추측이 있긴 했다. 낙원상가는 원래 옛날부터 불량스러운 놈들이 자주 드나들던 곳이다. 그 놈들이 돈을 뜯어내느라 너를 두들겨 팼을 것이고, 어쩌다가 머리를 잘못 쳐서 기절을 시킨 게 틀림없다. 그 놈들도 사람을 죽였나 싶어 기겁해가지고 지갑만 챙겨 황급히 달아났을 것이다. 하여튼 딴따라 놈들 보면은 순 깡패 새끼뿐이라…… 뭐, 여기서부터는 공장 아저씨들의 근거 없는 험담이 시작되므로 생략하도록 하겠다. 하지만 아예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닌 게, 신도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할만한 정황이 몇 가지 있긴 했다. 첫째, 그가 깨어난 곳이 낙원상가 내에서도 사람이 거의 올 일 없는 구석진 층계참이었다는 점. 둘째, 가지고 있는 소지품이 하나도 없었다는 점. 하지만 신도의 외투 안주머니에 들어있던 100만원 상당의 현금만큼은 그대로 있었다. 불량배들도 거기까지는 뒤져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도대체 100만원씩이나 현금으로 들고서 낙원상가를 뭐 하러 갔던 걸까. 신도는 여러 번 생각해 보았지만 결론은 하나뿐이었다. 악기 상가니까 악기를 사러 갔겠지. 뭘 사려고 했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판매상이 현금을 들고 오면 싸게 해주겠다는 조건이라도 걸었던 게 아닐까. 그럼 내가 음악을 하던 사람이었나? 하지만 그런 기억은 신도에게 전혀 없었다. 기억상실이란 참 묘한 것이었다. 자신의 이름도 기억나고, 나이도 기억나고, 일상생활에 필요한 정보나 기술들은 모두 그대로 가지고 있는데, 오로지 자기가 뭘 하던 사람이었는지에 대한 기억만 통째로 날아가 버린 것이었다. 가족에 대한 것도 그랬다. 신도는 자기가 마포구 일대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는 건 기억했고, 집 위치도 기억했지만 가족에 대한 것은 하나도 생각이 나질 않았다. 어머니는 누구이고, 아버지는 누구인가. 형제가 있었던가? 도무지 생각나는 건 하나도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가족에 대한 생각을 할 때마다 참기 힘든 불쾌감이 들었다. 그래서 신도는 머지않아 가족에 대한 궁금증은 접어버렸다. 뭔가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거겠지. 아니나 다를까, 이후로도 가족 중 누군가가 먼저 신도를 찾아오는 일은 없었다. 역시, 뭔가 문제가 있는 가족들이었나 보다. 그냥 처음부터 나 혼자 살아온 거라 생각하고 미련 가지지 말자. 신도는 그렇게 마음먹었다.

  문제는, 스스로 뭘 하던 사람이었는지 기억을 못하니 직장에 대한 기억도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결근이 계속되면 먼저 전화가 오지 않겠나 하는 생각에 한 동안 가만히 있어보았지만 전화도 오질 않았다. 집 전화번호는 모르고 핸드폰 번호만 알려준 건가…… 하지만 핸드폰도 불량배들이 가져가버렸으니…… 아니면, 백수였나. 어찌된 일이던 간에 신도는 다시 일을 시작해야만 했다. 원래 할 줄 아는 게 아무 것도 없었는지, 아니면 까먹은 건지 아무튼 전문적인 능력을 요하는 직장에는 취직할 수 없었기에 신도는 단순 노동력만 필요로 하는 공장에서 일을 했다. 오랜 기간 일을 하며 공장 사람들과도 친해졌고, 그들은 신도의 기억 상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크게 놀라면서도 안타까워했다.

  그러면 아무튼 음악 하던 사람이었나 본데, 네가.

  사람들은 하나 같이 그런 말들을 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이라고 신도는 생각했지만, 그 역시 나중에는 정말 그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건 신도가 스스로 가진 남다른 재능을 자각하고 나서 부터였다.

  공장에서 일을 하다 보면 각종 파트에서 각종 기계들이 만들어내는 온갖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신도는 그 소리들을 음으로서 정확하게 구별해낼 수 있었다. 음악에 대한 지식은 전무했기에 계이름으로 말할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프레스가 내려갈 때 처음 내는 소리, 그보다 높은 게 컨베이어 벨트 돌아가는 소리, 그 중간에 있는 게 카트 끌고 가는 소리…… 하지만 카트가 3번 라인이랑 2번 라인 사이를 지날 때만큼은 가장 낮은 음을 내고…… 이런 식으로는 짚어낼 수 있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신도가 일하는 파트로부터 한 50m는 떨어진 도색 파트에서 쓰는 5개의 컴프레셔 중 세 번째 컴프레셔가 평소와 다른 음을 낸 것이었다. 신도는 그런 걸로 뭐라 얘기를 해봤자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거라 생각해서 가만히 있었지만, 그날 저녁 그 컴프레셔는 바로 고장이 나고 말았다.

  신도는 음악을 좋아하지 않았다. 좋아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듣기도 싫어했다. 왜 그렇게 음악을 싫어하는 지는 본인도 알 수가 없었다. 안 좋은 일을 당한 곳이 악기상가라 그런가? 하지만 그런 이유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본능적인 혐오감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도는 어느 날 동네 문방구에서 멜로디언을 하나 사왔다. 스스로의 재능을 시험해보기 위해서였다. 그는 TV를 틀었다. 그리고 TV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음악들을 멜로디언으로 연주해보았다.

  결과는 엄청났다. 단순한 CM송부터 복잡한 아이돌 노래에 이르기까지, 그가 멜로디언으로 곧장 연주할 수 없는 곡은 하나도 없었다. 당연히 신도로써는 난생 처음 들어보는 음악들이었고 악기를 연주해보는 것도 난생 처음이었다. 하지만 처음 1~20분 동안 어떤 건반에서 어떤 음이 나는지만 익힌 뒤로는, 그 자리에서 듣는 모든 곡을 바로 연주할 수 있었다. 그런데 신도는 자신의 재능을 정확하게 깨닫고 나서도 뭔가 기쁘다거나 놀랍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의아했다. 그는 음과 박자의 조합이라는 게 얼마나 단순한 건지를 대번에 알아챘다. 이렇게 쉬운 걸로 왜 사람들은 좋고 나쁜 걸 따지는 거지? 아니 정확하게는, 안 좋은 노래를 만든다는 게 가능한 일인가?

  신도는 자신의 가설을 정확하게 입증하기 위해서, 공장에서 알게 된 한 동생을 찾아갔다. 그는 밴드인지 뭔지, 아무튼 음악을 하며 돈을 버는 청년이었다. 신도는 멜로디언을 가져가서 그에게 곡을 하나 연주해주었다. 신도가 전날 집에서 대충 만든 곡이었다. 그걸 듣고 난 동생은 벙찐 표정으로 신도를 바라보았다.

  이걸 형이 만들었다구요?

  신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에 들면 니네가 써. 대신 꼭 니네가 만들었다고 해야 한다.

  동생은 신도의 연주를 핸드폰으로 녹음해갔다. 그리고 얼마 뒤 가사와 함께 나름 어레인지를 거쳐 발표된 그 곡은, 대번에 차트 1위에 올랐다. 그 동생은 신도가 신신당부한대로 실제 작곡가의 정체를 절대 밝히지 않았고, 덕분에 그의 밴드는 떠오르는 천재적 멜로디 메이커들로 주목 받았다. 더 나중 이야기지만, 신도가 곡을 준 건 그게 마지막이었기에 어찌 보면 당연하게도 그들은 소포모어 징크스를 극복하지 못하고 모두의 기억 속에서 잊혀졌다.

  아무튼 이 사건을 계기로 신도는 생각했다. 나는 이걸로 떼돈을 벌 수 있겠구나. 이 정도로 국내차트 1위를 한다면, 그가 생각하기에 빌보드 1위곡 정도쯤은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문제는, 앞서 말했듯이 그가 음악을 아주 혐오한다는 점이었다. 자신의 재능과 성향 사이에서 고민하던 신도는 한 가지 해결책을 생각해냈다. 그가 생각하기에 작곡이란 그 원리만 알면 무조건 좋은 곡이 나오는 것이기에, 굳이 사람이 만들 필요가 없었다.

  즉, 작곡하는 기계를 만들면 된다. 신도가 내린 결론은 그러했다.


2장. 볼프강 아마데우스

 

  여기에서부터 신도가 가진 두 번째 재능이 발휘되었다. 그는 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자신이 기계에 대해 남다른 이해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이해력이라는 건 보통의 범주를 훨씬 넘는 것이어서, 처음 보는 기계라도 신도라면 어떤 원리로 돌아가고 있는지 대번에 알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건 아주 일부분에 불과했고, 신도가 느낄 수 있는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다. 그는 항상 자신이 기계와 교감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정신 나간 소리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가 스스로 생각하기에 그보다 적합한 표현은 없었다. 공장에서 오랫동안 사용하던 변압기가 고장 났을 때, 수리공을 불러서도 고치지 못하자 결국에는 폐기처분을 하기로 결정한 일이 있었다. 신도는 그 때 변압기를 보며 뭔가 슬픈 마음이 들어서, 자기도 모르게 고쳐보겠다고 나섰다. 주변 사람들은 전문가도 못 고친다고 했는데 무슨 시간낭비냐며 뭐라고 했지만, 신도는 그런 말들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묵묵히 공구질을 해서 단 10분만에 변압기를 되살려냈다. 사람들은 모두 놀라워하며 그에게 도대체 어떻게 고쳤느냐고 물었다.

  글쎄요. 만약 사람이라면 그 부분이 아플 거 같아서……

  신도가 워낙 작게 중얼거리는 바람에 그 말을 제대로 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무튼 이런 재능이 있다 보니, 신도가 작곡하는 기계를 만들겠다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하게 된 데에도 다 근거는 있는 셈이었다. 그는 일단 공장부터 그만두었다. 워낙 일을 잘하는 직원이었기에 모두가 아쉬워했다.

  이제 뭐하고 살려고 그래?

  작곡하는 기계 만들어서 히트곡 왕창 뽑아내가지고 빌보드 1위 찍고 평생 놀고 먹으려구요. 라고 차마 말할 수는 없었기에, 천천히 생각해봐야죠 뭐. 그렇게 신도는 둘러댔다.

  일은 그만둔 지 이틀 만에 신도는 설계도 작성을 끝냈다. 그리고 일주일 동안 전국을 돌며 필요한 부품과 도구들을 모았고, 바로 작업에 착수했다. 작곡 기계의 원리는 아주 복잡하여 자세하게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간략하게 이야기하자면 결국 경우의 수를 도출해내는 기계였다. 그런데 아무 음의 조합이나 도출해낸다면 당연히 별로인 곡, 심지어 불협에 가까운 곡들도 나올 수가 있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신도는 경우의 수 중에서도 사람이 가장 좋다고 느낄 수 있는 음의 조합들만 도출해낼 수 있도록 일종의 수식을 걸어두었다. 그 수식이란 신도가 본능적으로 입력하는 무작위 변수의 집합에 가까웠기 때문에, 설명한다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직 완성품은 아니었지만, 신도는 기계에 이름을 지어주기로 했다. 사람들은 인류 역사상 최고의 작곡가로 누구를 꼽을까. 신도가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여러 가지 의견들이 있었지만 대체로 모차르트를 꼽고 있었다. 그는 검색한 김에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어보았다. 코웃음이 날 뿐이었다. 이것 또한 복잡해 보이지만 결국 사람들이 좋다고 느끼는 일정 음의 배합을 따라갔을 뿐. 기계만 완성이 된다면 모차르트쯤은 몇 만 명이 있다고 해도 비할 바가 아니었다. 신도는 사람들이 모차르트에게 보내는 칭송에 대한 반발로 그의 이름을 따다가 기계에 붙이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작곡 기계의 이름은 볼프강 아마데우스가 되었다.

  그런데 신도가 작업에 열중하고 있던 어느 날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잠깐 사올 물건이 있어 신도가 집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는데, 현관문에 뭔가가 밀려나는 느낌이 들었다. 택배라도 와있나 하고 신도는 생각했지만, 그가 나가보니 문에 걸리던 것의 정체는 죽은 비둘기였다. 신도는 깜짝 놀랐다. 죽은 비둘기가 왜 여기 있단 말인가. 만약 집이 주택이라면 어쩌다가 날아와서 죽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신도의 집은 빌라 3층이었다. 복도 창문들도 닫혀있었기에, 혼자 날아 들어와 여기에서 죽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그렇다면, 누가 일부러 가져다 두었다는 건가. 신도는 그 때까지만 해도 자기가 생각하지 못하는 무슨 우연으로 거기까지 와서 죽었겠거니 생각하며, 비둘기를 화단에 내다가 버렸다.

  하지만 비슷한 일은 며칠 뒤에 또 벌어졌다. 이번에는 고양이가 죽어있었다. 그로부터 또 며칠 뒤에는 쥐가 다섯 마리 쯤 죽어있었고, 문에는 ‘자본주의의 노예’라는 쪽지가 붙어있었다. 신도는 누군가가 자신을 의도적으로 겁주려 벌이는 일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하지만, 누구에게 미움을 산건지 도대체 감도 안 잡힐뿐더러 ‘자본주의의 노예’가 다 무슨 말인가? 그로부터 또 며칠이 지나서야 신도는 마침내 범인을 잡게 되었다.

  초저녁쯤, 그가 집 앞 편의점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층계를 돌아 3층으로 올라서려는데 누군가 자신의 집 앞에 쭈그리고 앉아있는 게 보였다. 둘은 눈이 마주쳤고, 상대방은 크게 당황했다. 범인의 인상은 매우 강렬했다. 머리는 빡빡 민데다가 얼굴 여기저기에는 피어싱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으며 검은 가죽 자켓을 입었고, 청바지는 어디 불난 옷가게에서 혼자 살아나오기라도 했는지 누더기에 가까운 꼴이었다. 덩치도 매우 커서 신도는 당연히 남자일거라고 생각했으나, 이목구비를 좀 더 자세히 보니 여자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막 죽은 거북이를 신도의 집 앞에 내려놓던 참이었다.

  당신 누구야?

  그녀는 황급히 계단을 내려와 신도를 밀치고는 지나가려 했다. 하지만 신도는 그녀의 팔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놔, 이 새끼야!

  그녀는 신도를 떼어내려고 붙잡힌 팔을 마구 흔들다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으아아악!

  왜, 왜 그래요?

  어깨가, 어깨가……

  과격한 다툼 끝에 그녀의 어깨가 빠진 모양이었다. 

  결국 구급차가 와서 그녀를 실어갔다. 신도는 그녀의 어깨를 빠지게 한 혐의로 일단 경찰서에 끌려갔다. 신도가 일의 자초지종에 대한 설명을 끝낼 때 쯤, 어깨를 끼워 맞춘 여자 또한 경찰서에 나타났다. 경찰은 그녀에게 왜 그런 짓을 했는지 물었지만 끝내 대답은 들을 수 없었다. 경찰은 화해를 종용했고, 신도 또한 굳이 처벌을 원하지는 않았기에 두 사람은 대충 조서를 쓰고 나서 경찰서를 나섰다.

  잠깐 얘기 좀 하시죠.

  신도가 어색한 분위기 속에 먼저 말을 꺼냈다.

  둘은 근처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그, 비둘기랑…… 고양이랑 그거는…… 직접 죽인 거에요?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거북이는 어디서 났어요? 샀나…….

  신도는 뭔가 질문의 핀트가 어긋났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궁금한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나한테 무슨 원한이 있는지는 몰라도 동물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죽여요.

  걔들도 어차피 죽어. 내가 일찍 자유를 준 것 뿐이야.

  말투는 원래 그래요?

  좆까…….

  얘기는 본론으로 넘어가서, 신도는 도대체 자신에게 왜 그런 테러를 가했는지 물었다. 여자가 털어놓은 이야기는 아주 뜻밖이었다. 모든 것은 신도가 곡을 주었던 그 동생. 그 동생의 밴드로부터 시작했다.

  만드라고라는 원래 세상과 타협할 줄 모르는 친구들이었어.

  얘기 시작부터 죄송한데, 만드라고라가 뭐에요.

  성현이네 밴드 말이야.

  성현이가 바로 신도에게 곡을 받은 그 동생의 이름이었다. 신도는 계속해서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음악도 아주 거칠고, 날이 서있었지. 그런데 너한테 곡을 받은 뒤로 모든 게 달라진 거야.

  저한테 받은 줄 어떻게 알았어요?

  얼마 전에 성현이를 만나서 술을 마셨어. 술이 좀 취하니까, 녀석은 울면서 마음의 짐을 토로하더군. 사실 자기가 쓴 노래가 아니라고. 아는 형이 준 곡이라고. 그런데 자기는 절대로 그 벽을 넘을 수가 없다고…… 나는 말했지. 어쩐지 곡이 병신 같더라니, 니네가 쓴 게 아닐 줄 알았어. 차트 1위를 하면 뭐해? 그 곡은 죽어있어. 너희는 살아있는 음악을 하던 애들이잖아. 그러니까 성현이가 그러더라고. 누나, 고등학교 때부터 몇 년 동안 데스 메탈만 해왔는데 인기는커녕 관심도 못 받아봤어요. 그런데 음악을 바꾸니까 바로 차트 1위까지 올라가잖아요? 그 말에 나는 벌떡 일어나서 잔에 든 술을 성현이의 얼굴에 뿌렸지. 야 이, 병신 같은 새끼야! 자지 떼!

  저기, 죄송한데 조금만 작게 얘기해주시면……

  자지를 떼라고 차라리! 네가 그러고도 음악 하는 새끼야? 차트 1위가 그렇게 좋았어? 그러니까 성현이가 좋긴 좋더라구요, 하면서 여전히 정신 못 차리고 지랄을 하더군. 그런데 누나, 도저히 그런 곡을 쓸 수가 없어요. 이제 저희는 메탈 밴드도 아니고, 그렇다고 ‘츄피츄’ 같은 명곡도 못 쓰는 아무것도 아닌 밴드가 됐다구요.

  츄피츄가 뭐에요?

  니가 준 곡이잖아.

  가사는 제가 안 써서……

  그래, 제목 봐봐. 애들이 맛이 갔잖아. 그 때 난 생각을 한 거다. 그 새끼구나. 츄피츄인지 뭔지 그 개 같은 곡을 써준 그 새끼 때문에 나의 동지들, 만드라고라가 이렇게 된 거구나. 그래서 난 복수를 하기로 다짐하고 너희 집을 알아냈다. 자본주의의 노예를 지옥의 불구덩이에 빠뜨리기 위해서.

  그랬군요…….

  사건의 자초지종을 알게 된 신도는 일단 더 할 말도 없고 해서 그녀와 헤어지기로 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리고 이제 그런 일은 그만두셨으면 해요.

  하지만 그녀는 그 후로도 자주 신도의 집 앞에 출몰했다. 어느 날은 또 비둘기를 들고 나타났기에 신도가 말했다.

  다른 건 다 좋은데, 동물들은 그만 괴롭혀요. 그 대신 음식물 쓰레기 같은 건 어때요?

  그녀는 이번에도 어차피 죽을 생명들…… 어쩌구 저쩌구 중얼거리긴 했지만 그래도 찔리는 게 있었는지 그 다음부터는 신도의 말대로 쓰레기를 들고 나타나기 시작했다. ‘자본주의의 노예’니 ‘그리스도의 앞잡이’니 하는 쪽지들도 종종 붙였다. 신도는 군말 없이 쓰레기를 치우며 쪽지를 떼어냈다. 가끔씩 마주칠 때는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오늘은 왜 이렇게 늦게 왔어요?

  그러다가 신도는 그녀의 이름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을 ‘발레리’라고 하며 본명을 알려주지는 않았다. 아무튼 신도는 그녀를 발레리라고 부르기로 했다.

  어느 날 발레리는 여느 때보다 이른 시간에 쓰레기를 들고 나타났다. 등에는 기타를 메고 있었다.

  어, 발레리도 음악 해요?

  나도 밴드 해.

  아, 만드라고라?

  그건 성현이네고. 우린 아스테릭스야.

  네…… 오늘 연습하나봐요?

  공연.

  발레리는 쓰레기를 신도의 집 앞에 내려놓고 계단을 내려갔다. 그러다가 잠깐 멈춰서더니, 돌아서며 말했다.

  할 거 없으면 와보던가. 오늘 여덟시 콜트 클럽이야.

  신도는 당연히 갈 생각이 없었지만, 여덟시가 되어갈 무렵 갑자기 조금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발레리는 도대체 어떤 음악을 하길래 맨날 자기한테 자본주의의 노예라고 하는 건지. 신도는 그녀가 말한 콜트 클럽의 위치를 찾아보았고, 시간에 맞추어 가보기로 했다.

  신도는 뭔가 엄청나게 북적거리고 시끄러운 분위기를 생각했는데, 클럽 내부는 아주 한산했다. 음악만큼은 엄청나게 시끄러웠지만 보고 있는 관객들이 예닐곱 명 정도 밖에 안 되는 탓에 뭔가 이상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예닐곱 명 뿐인 관객들은 그만큼 빈 공간을 마음껏 누비며 머리를 흔들고 서로 몸을 부딪치며 난동을 부리고 있었다. 신도는 난생 처음 보는 광경에 당황하며 무대를 올려다보았다. 장발의 남자들이 기타를 치며 드럼을 때려 부수고 있었는데 하나같이 얼굴이 보이질 않았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발레리가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아니, 노래를 부른다기 보다는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이게 무슨…… 볼프강 아마데우스의 방식으로는 전혀 나올 수가 없는 음들이었다.

  하지만 신도가 생각하는 음의 공식에서 아예 벗어나니 오히려 뭔가 자유로운 듯한 느낌이 들었다. 볼프강 아마데우스로 구현할 수 없는 음악이 있다면 아마도 이런 음악일 거라고, 신도는 생각했다. 그런데도 이렇게 즐기며 서로 몸을 부딪치는 사람들이 있다. 음악이란 정말 이상한 게 아닌가. 신도는 뭔가에 홀린 듯이 발레리의 무대를 구경했다.

  공연이 끝난 뒤, 신도는 클럽 뒤쪽을 서성였다. 발레리를 만나서 잘 봤다는 인사라도 하고 싶어서였다. 잠시 후, 저쪽 멀리에서 발레리와 그녀의 밴드 멤버들이 나오는 게 보였다. 신도는 그 쪽으로 다가가다 말고,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걸음을 멈추었다.

  그게 뭔 소리야? 그럼 나 말고 누가 있는데?

  발레리가 멤버들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저기…… 쥬디 알지? 쥬디가 우리랑 같이 하기로 했어.

  그 머리 노란 멍청한 년? 정신 차려! 무슨 에이브릴 라빈 백밴드나 되려고 그러는 거야?

  아무튼, 우리는 네 보컬이 조금 아쉽다고 생각해서……

  지랄하고 자빠졌네! 그 년이 얼굴이 반반하니까 그렇겠지!

  멤버들은 뭐라고 대꾸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발레리를 두고 떠나갔다. 발레리는 그들의 등 뒤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그래, 꺼져라, 이 병신 같은 새끼들아! 니네도 가서 팝이나 불러!

  그녀는 뭐라고 계속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더니, 전봇대 앞에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울음을 터뜨렸다.

  으아아아앙……

  신도는 어찌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다가 조심스레 발레리에게 다가갔다.

  저기, 발레리.

  그녀는 울면서 신도를 올려다보았다.

  뭐야, 자본주의 테러범 새끼가……

  테러범은 굳이 따지면 그 쪽이 테러범……

  신도는 앞에 같이 쭈그려 앉아서 그녀를 다독여주었다.

  대충 무슨 상황인지는 알겠는데, 너무 속상해 하지 마요. 나는 오늘 너무 좋았는데, 저것들은 뭘 알지도 못하면서 저러네.

  씨발, 좋기는 뭐가 좋아. 입 발린 소리나 할 거면 집에 가서 내가 버린 쓰레기나 치워.

  오늘 치우고 나왔어요.

  아까 리허설 끝나고 한 번 더 버렸어. 엉엉…….  

  부지런하네요…….

  신도는 자기도 모르게 발레리를 꼭 안아주었다.

  진짜로 좋았어요. 배신자들은 신경 쓰지 마요.

  그러자 발레리의 울음소리가 점점 잦아들었다.

  진짜로 좋았어?

  그렇다니까요. 왜 나보고 맨날 자본주의의 노예라고 그렇게 욕했는지 알겠네.

  발레리는 신도를 빤히 바라보더니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으아아아앙……

  아니, 왜 또 울어요.

  쓰레기 버려서 미안해…….

  괜찮아요……. 운동되고 좋았어요…….

  신도는 우는 발레리 앞에 쭈그려 앉아서 그렇게 30분 가까이를 안고 있었다.  

 

3장. 악마를 숭배하는 마음과 염소의 머리

 

  그 날, 둘은 술을 많이 마시고 신도의 집에서 함께 잠을 잤다. 술기운에 저지른 실수는 아니었다. 신도도 발레리도, 콜트 클럽 뒤에서 그렇게 부둥켜안고 있을 때부터 서로를 사랑하게 될 거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신도는 아침 일찍 먼저 일어나 자신의 옆에서 잠든 발레리의 얼굴을 가만히 살펴보았다. 처음에는 무섭다고만 생각했던 그녀의 인상이었지만, 가만히 보니 그렇지만도 않았다. 얼굴 곳곳에 뚫린 피어싱도 처음에는 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반짝반짝 빛나는 게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몸 곳곳에는 몰랐던 문신도 많았는데 그 역시 이제는 신도에게 거부감을 주지 못했다.

  신도는 먼저 침대에서 일어나 습관적으로 볼프강 아마데우스 앞에 섰다. 거의 군고구마 화로 크기 정도 되는 기계는 이제 완성이 머지않은 상태였다. 신도는 시험 삼아 짧은 멜로디를 뽑아보기로 했다. 그가 버튼을 누르자 약 10초 후, 네 마디 정도 되는 음이 반복되어 재생되기 시작했다. 잠시 후에는 영수증처럼 좁고 긴 종이에 그려진 오선지 위에 해당 음들이 출력되었다. 신도의 원안대로만 완성된다면 이 정도 수준의 멜로디를 최소 10만 가지 정도는 만들어낼 수 있을 터였다.

  이 거지 같은 음악은 뭐야?

  어느 새 일어난 발레리가 신도의 뒤에서 물었다. 그 동안 극비리로 작업을 해온 신도였지만 발레리한테까지 볼프강 아마데우스의 존재를 숨길 수는 없었다. 신도는 그녀에게 자신의 잃어버린 기억과 여태까지 있었던 일들에 대해 자세하게 말해주었다. 이야기를 듣고 난 발레리는 크게 놀랐다.

  그런 기계를 만들 수가 있어?

  응. 거의 완성이야.

  발레리는 볼프강 아마데우스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래서, 이걸로 떼돈 벌게?

  원래는 그러려고 했지.

  그녀는 돌아서서 외투를 챙겨 입었다.

  난 네가 싫지 않지만, 그런 기계를 만드는 놈이랑은 만날 수가 없어.

  신도는 방금 출력된 오선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 곡이 아마 처음이자 마지막일 거 같아.

  두 사람은 모두 차가 없었기에 리어카를 빌려 볼프강 아마데우스를 싣고 멀리까지 갔다. 둘은 거의 산 초입까지 가서야 구덩이를 발견하고 멈춰 섰다. 신도와 발레리는 양쪽 기계 끝을 마주잡고, 힘을 모아 구덩이에 기계를 내던졌다. 볼프강 아마데우스는 구덩이로 굴러 떨어졌다. 신도는 만감이 교차하는 듯 기계를 보았다. 그 기계에만 쏟은 지난 몇 개월의 시간이 떠올라서였다.

  근데 왜 여기까지 온 거야?

  발레리가 물었다.

  동네에 버리려면 딱지 붙여야 해서…….

  하여튼 별 걸로 다 돈을 뜯어. 개 같은 자본주의 국가.

  신도는 한 동안 볼프강 아마데우스를 보며 말이 없었다.

  이제 뭐 할 거야?

  응?

  발레리의 물음에 신도는 그녀를 보았다.

  다시 공장 들어가게?

  신도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발레리는 신도에게 드럼을 배워보라고 권유했다. 한 명이 드럼을 치면 둘이서라도 밴드를 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드럼이 멜로디 악기는 아니었지만, 타고난 신도의 감각 덕에 금방 수준급 연주를 할 수가 있었다. 발레리는 본래 자기의 스타일대로 과격하게 기타를 치며 세상에 대한 비판을 실어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2인조 밴드가 탄생했다.

  아스테릭스인가? 그 이름 계속 쓰면 되는 거 아냐?

  그 이름은 재수 없어서 안 써. 완전히 새로 시작할 거야.

  발레리가 새로 가져온 이름은 ‘스바르트알파헤임’이었다.

  너무 길지 않나…….

  그럼 뭐? ‘퀸’ 같은 거나 하자 이거야?

  발레리는 언제나 중간이 없었다.

  신도는 스바르트알파헤임에 몸담고 있는 동안 자신의 작곡 실력은 일절 발휘하지 않고 오로지 드럼 연주에만 몰두했다. 대신 발레리가 ‘피의 가을’, ‘대학살의 밤’, ‘머리 수집가’ 같은 곡들을 열심히 쏟아냈다. 그렇게 음악적 동료로, 그리고 연인으로 지내는 동안에도 발레리는 자신의 본명만큼은 알려주지 않았다. 신도가 물었다.

  나도 예명을 짓는 게 좋을까?

  아니. 너는 원래 이름 자체가 괜찮아.

  그럼 나도 머리 밀까?

  아니. 너는 길러야지.

  신도는 머리를 기르면서 몇 개의 문신도 새겼다. 도안들은 모두 발레리가 추천해 준 것이었지만 신도는 악마나 염소 머리 같은 것들이 도대체 다 무슨 의미고 무슨 멋이 있는 건지 솔직히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발레리는 신도가 그녀의 취향에 닮아갈수록 좋아하는 것 같았고, 신도는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가장 어려운 건 발레리의 염세적인 태도를 닮는 일이었다. 신도는 발레리처럼 세상이 썩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교회를 혐오하지도 않았으며, 자본주의에 그렇게 염증을 느끼지도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신도가 공연 중에 관객들을 내려다보니 한 무리의 남자들이 자신과 발레리를 보며 비웃고 있었다. 신도는 그들을 어디선가 보았다고 생각했지만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러다가, 그들 사이에 있는 노란 머리의 여자를 보고서야 정체를 기억해냈다. 아스테릭스의 멤버들이었다. 신도는 드럼을 연주하며 발레리의 눈치를 살폈다. 그녀는 진작에 그들을 발견했는지 표정이 좋지 않아 보였다.

  한 곡이 끝나고 나서, 그들은 야유까지 퍼부어댔다. 발레리는 일부러 상대하지 않으려는 듯 눈을 피했다. 그러자 그들은 발레리가 겁을 먹었다고 생각했는지 기세등등하여 더욱 소리를 쳐댔다. 그 때, 신도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앞으로 나오더니 마이크를 잡고 외쳤다.

  돼지 같은 새끼들! 니들 멱을 따서 그 구멍에다 좆을 박아주마!

  그러자 객석은 죽은 듯이 조용해졌고, 누구보다도 발레리가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 날 이후로 신도는 본래 마음과 상관없이, 무대에서만큼은 ‘지옥에서 올라온 악마’ 행세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한 줄로 서라…… 악마의 송곳니로 너희 피부를 도려내어……

  그런 노랫말과 함께 신도도 거의 흰자를 드러내며 미친 듯이 드럼을 두들겼지만, 어느 날 문득 궁금한 생각이 들어 그가 발레리에게 물었다.

  그런데, 너는 왜 그렇게 화나는 일이 많은 거야?

  그거야 세상이 개 같으니까.

  그래……?

  너도 그렇지 않아? 별 병신 같은 새끼들한테 얻어맞아서 기억도 잃어버리고, 가족이란 것들은 뭔 짓을 했는지는 몰라도 인생에 하나 도움 안 되고. 인간들은 사랑 노래나 쳐들으면서 뒤에서는 강간하고 사람이나 죽이고.

  발레리는 거기까지 말한 뒤 잠시 침묵했다가 말을 이었다.

  나는 가족들한테 완전히 버려졌어. 나 같은 거 딸로 두느니 없는 셈 치겠대. 가족들도, 같이 오랫동안 음악 하던 동료들도. 다 내가 이상한가봐. 가족들은 그렇다 쳐도 동료라고 하던 놈들은 처음엔 내가 멋있다고 하더니, 사실 다 말뿐인 거야. 멋있다고 하는 말, 잘 골라 들어야 돼. 대부분은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겉으로만 그렇게 말하는 거거든. 

  발레리는 신도의 손을 잡았다.

  그래도 너는 유일하게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는 사람이야. 그래서 너한테 고마워.

  신도는 그렇게 말하는 발레리가 낯설게 느껴졌다.

  네가 나한테 맞춰주는 거에 비해 나는 너무 편협했던 거 같아. 세상에 정답이 한 가지만 있는 건 아닌데. 아마데우스인가 그거, 아직 기회가 있다면 다시 가져왔으면 좋겠어. 물론 스바르트알파헤임에서 쓸 일은 없겠지만, 어쨌든 네 작품이잖아.

  너 때문에 버린 거 아냐.

  말은 그렇게 했지만, 다음 날 신도는 자신이 버린 기계가 궁금해지기는 했다. 그래서 구덩이에 가보았지만 이미 기계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 사이에 누군가가 고물상에라도 주워다 판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날 밤, 신도는 병원으로부터 연락을 받아 응급실로 달려갔다. 신도는 본인이 기억하는 한에서는 그 때 처음으로 병원에 발을 들인 것이었다. 놀랍게도 그는 가벼운 병치레조차 한 번 한 적 없을 정도로 건강했기 때문이었다. 처음으로 와 본 병원의 풍경은, 특히 응급실의 풍경은 처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 한 구석에 발레리가 누워있었다.

  발레리는 누군가에게 심하게 얻어맞아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그녀가 호프집에서 아는 친구를 만나 술을 마셨는데, 옆자리의 남자들과 시비가 붙었다고 했다. 발레리와 함께 있던 친구 말로는 옆자리 남자들이 발레리의 차림새와 외모를 가지고 욕을 했고, 발레리가 성질대로 맞서자 둘러싸고 구타를 했다는 것이었다. 신도가 도착했을 때 발레리의 얼굴은 이목구비를 제대로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발레리는 신도를 보자 간신히 손을 들어 그의 팔을 잡았다. 하지만 말을 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발레리는 들리지 않는 소리로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신도는 귀를 대고 그녀의 말을 들으려 했다.

  나…….

  발레리는 뭐라고 계속해서 반복해서 말을 했지만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몇 번 뒤에야 신도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수 있었다.

  나…… 박선미…….

  그 말을 마지막으로, 그녀는 다신 입을 열지 않았다.

  장례식을 찾아온 이들은 그녀의 음악 동료들 몇 명뿐이었다. 일가친척은 보이지 않았다. 영정사진 속 발레리의 모습은 평범한 여고생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신도는 사실상 상주 역할을 하며 장례를 치르고 비용도 대주었다. 3일 내내, 신도는 이상하게도 눈물이 나지 않았다.

  장례가 끝난 뒤 집에 돌아온 신도는 지친 몸을 침대에 눕혔다. 집안을 둘러보니 곳곳에 발레리의 흔적들이 있었다. 징 박힌 가죽 자켓, 해골로 범벅이 된 옷, 정체를 알 수 없는 사슬들…… 그러다가 신도의 시선은 자신의 팔에 머물렀다. 악마와 염소 머리 문신이 보였다. 신도는 다른 손을 뻗어 문신을 더듬어 보았다.

  자본주의의 노예 새끼들…….

  신도는 발레리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을 중얼거려보았다.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그는 이내 참지 못하고 엎드려서 엉엉 울었다. 발레리가 떠났다. 이제는 이 세상에 없다.

 

4장. Random Access Memories

 

  신도는 그 이후로 머리도 짧게 자르고 음악과는 아예 관계없는 삶을 살았다. 하지만 발레리가 남긴 말만큼은 문득문득 떠올랐다. 볼프강 아마데우스를 다시 가져왔으면 좋겠다는 그녀의 말. 신도에게는 그 말이 이전까지와는 다른 사고를 가지게 된 발레리의 마지막 바람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근처 고물상 등을 돌며 수소문을 해보았지만, 비슷한 물건이 들어왔다는 얘기를 듣진 못했다. 신도는 단념하고 다시 공장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일을 마치고 퇴근한 신도는 TV를 켜놓고 늦은 저녁을 차리고 있었다. 그런데, TV에서 어딘가 굉장히 익숙한 멜로디가 들려왔다. 내가 아는 노랜가. 신도는 TV를 보았다. 다프트 펑크라는 일렉트로닉 듀오의 외국 공연 실황이었다. 두 사람은 얼굴이 아예 안 보이는 커다란 헬멧을 쓰고 디제잉을 하고 있었다. 처음 드는 이름인데, 이 멜로디는 어디서 들어봤더라…… 그냥 유명한 탓에 어디서 틀어주는 걸 지나가다 들었겠지 하고 넘어가려는데, 갑자기 신도의 머릿속을 스치는 게 있었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그 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시험 삼아 뽑아둔 멜로디.

  신도는 황급히 서랍을 뒤졌다. 잡동사니들 사이에서 그 때 출력해둔 악보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그는 이어서 먼지 쌓인 멜로디언을 꺼내 거기에 출력된 멜로디를 연주해 보았다. TV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멜로디와 똑같았다.

  그는 인터넷으로 다프트 펑크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았다. 93년도에 데뷔한 그들은 프랑스의 일렉트로닉 듀오로, 사람이 아닌 로봇이라는 특이한 설정을 가지고 헬멧으로 얼굴을 가린 채 활동을 하고 있었다. 신도는 몰랐지만, 이미 전세계적으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전설급 듀오였다. 데뷔는 볼프강 아마데우스를 만들기보다 훨씬 전이다. 그렇다면 단순히 한 곡만 우연하게 멜로디가 겹쳤을 뿐일까. 하지만 우연이라 보기엔 너무나 똑같은 멜로디였다. 그렇다고 그 때 출력한 멜로디가 어디로 유출되었을 리도 없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였다. 볼프강 아마데우스를 그들이 가져간 것이다.

  신도는 반드시 기계를 되찾아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오랫동안 다프트 펑크의 전세계적 공연 스케쥴을 체크하며 돈을 모았고, 마침내 파리에서 열리는 그들의 공연 좌석을 살 수 있게 되었다. 파리로 가는 비행기 내에서 그는 걱정이 태산이었다. 일단 가긴 가는데, 어떻게 그들을 개인적으로 만날 수 있을까. 만나더라도 뭐라고 얘기를 꺼내야 한단 말인가. 하지만 어쨌든 그들을 만나야 했다. 기계를 되찾을 수 있는 방법은 그것뿐이었다.

  파리에 도착해서 공연장을 찾아가고, 긴 줄을 선 끝에 안에까지 입성한 신도는 어떻게든 백스테이지로 들어갈 길부터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미처 방도를 찾기도 전에 본격적인 공연이 시작되어 버렸고, 사람들은 열띤 호응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 혼란 속에서 신도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무대 위를 올려다보았다. TV에서 본 헬멧 쓴 남자 두 명이 디제잉을 하고 있었다. 처음 들어보는 음악이었지만 저것 또한 볼프강 아마데우스로 만든 걸지도 모른다고, 신도는 생각했다.

  공연이 중반에 이르도록, 신도는 도무지 삼엄한 경비를 뚫고 백스테이지에 입성할 길을 찾지 못했다. 신도는 결국 공연장 쪽으로 들어가기를 포기하고 인파를 헤쳐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는 건물 뒤로 들어갈 길을 찾는 게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하고 공연장을 크게 한 바퀴 돌았다. 한참 뒤에야 창고 같은 곳 하나가 열려있는 걸 발견했고, 그게 어디로 이어질지 모르지만 신도는 일단 들어가 보기로 했다.

  길도 모른 채 정신없이 헤매다보니, 신도는 복도 같은 곳으로 나왔다. 그는 공연장 내부로 자신이 들어왔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백스테이지에는 계속해서 스탭들이 돌아다니고 있었고, 누가 봐도 관계자가 아닌 것 같은 동양인이 혼자 돌아다니다가 걸리면 내쫓길게 뻔했다. 신도는 아예 대기실을 찾아내어 그 내부에 숨어있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정신없이 대기실을 찾아다니던 와중에, 코너를 돌다가 스탭 한 명과 정통으로 마주치고 말았다.

  어…….

  그는 크게 놀라며 프랑스어로 뭐라고 물었다.

  죄송합니다…….

  신도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그가 알아들을 리 없는 한국어로 사과를 하고 말았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스탭의 반응이 의외였다.

  혹시 김석환 박사님이세요?

  라고 불어도 아닌 한국어로, 그가 물어온 것이었다. 신도는 무슨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지만 일단 그렇다고 하는 게 유일한 타개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 예. 맞습니다.

  아, 죄송합니다. 불어를 못하신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그런데 당신은 왜 그렇게 한국어를 잘하시는 건데요…… 라고 신도는 묻고 싶었지만, 그럴 분위기는 아니었다.

  이따가 신박사님 연구실로 오실 거라고 들었는데. 어떻게 여기로?

  아…… 뭐, 어쩌다 보니까…….

  대기실에서 기다리시죠.

  스탭은 신도를 대기실로 흔쾌히 데려갔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되가는 걸까.

  대기실 앞에 이르자 스탭은 도어락에 복잡한 비밀번호를 입력하더니, 문을 열고 신도를 안으로 안내했다. 신도는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내부의 광경은 약간 의외였다. 전세계 최정상급 뮤지션의 대기실이라고 하기엔, 너무 별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잠깐 앉아서 기다리시죠.

  스탭의 안내에 신도는 일단 의자에 앉았다.

  저는 루이라고 합니다. 얼마 전에 새로 이 자리에 왔습니다. 지금은 관계자 중에서 유일하게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니까, 안심하셔도 됩니다.

  네…….

  무슨 사실을 얘기하는 건지는 모르지만, 일단 신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공연이 끝나기 까지는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루이는 원래 말이 없는 성격인지, 아니면 근무 중이라 그런 건지 신도에게 딱히 말을 걸지도 않았다. 신도 역시 괜히 무슨 말을 붙여봤다가 일이 틀어질까봐 가만히 있었다. 와중에 루이가 무전 하나를 받더니 신도에게 말했다.

  이제 끝났습니다. 형제들이 곧 올 겁니다.

  형제들? 누가 온다는 건지 신도는 알지 못하고 가만히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나타난 건 다프트 펑크의 멤버 두 사람이었다. 신도는 깜짝 놀라 자기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막상 이렇게 만나니 얘기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를 않았다.

  김박사님께서 예정보다 일찍 오셔서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루이가 다프트 펑크에게 말했다. 그런데 신도를 본 다프트 펑크는 뭔가 이상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들의 헬멧 앞면에 불어로 쓰여진 무슨 메시지가 출력되었다. 저걸로 대신 의사소통을 하는 건가…… 정말 지독하게 컨셉을 유지하네, 라고 신도가 생각하던 와중에, 그 메시지를 본 루이의 표정이 굳었다. 그리고 그는 신도에게 물었다.

  김석환 박사님이 아니십니까?

  어, 네?

  어째서인지 들킨 모양이었다. 신도가 당황해하고 있는데, 문이 열리더니 또 다른 동양인이 나타났다. 중년의 동양인은 신도를 보고 물었다.

  아니, 누구십니까?

  한국말이었다. 이 사람이 진짜구나, 신도는 바로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다프트 펑크 중 한 명의 헬멧에 또 다른 메시지가 출력되었다. 루이가 신도에게 소리쳤다.

  당신 누구야!

  신도는 이렇게 된 거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다프트 펑크 멤버 중 한 명의 팔을 잡았다.

  한국에서 기계 하나 발견한 거 있지? 산에다 내가 버린 거, 그 왜…… 난로같이 생겨가지고……

  다프트 펑크는 당황해하며 헬멧에 무슨 메시지를 끊임없이 출력시켰다. 루이가 신도에게 달려들어 그를 저지했다. 그는 더 이상 한국말을 하지 않고 불어로 신도에게 소리를 치고 있었다.

  내가 만든 기계로 곡 만든 거잖아! 내가 악보도 가져왔는데……

  그 때, 신도에게 팔을 잡혀있던 멤버가 그를 뿌리치려는데 어디선가 우지직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의 팔이 통째로 뜯겨져 나간 것이었다. 신도는 기절할 뻔했다. 그런데 팔이 뜯겨져 나갔다고 해서 뼈가 보이거나 피가 솟구치는 일은 없었다. 대신, 그의 팔 단면에서 튀어나온 전선들이 스파크를 일으키고 있었다.

  이, 이게 도대체…….

  신도는 너무 당황하여 떨어진 팔을 들고 루이와 김박사를 보았다. 그들의 표정은 아주 심각했다. 루이는 무전기에 대고 무언가를 다급히 외쳤다. 그러자 몇 명의 요원들이 대기실로 들이닥치더니 일제히 신도를 붙잡았다.

  죄송해요! 그러려던 게 아니에요! 아니, 팔이 왜 떨어져…….

  그들은 신도를 어딘가로 끌고 가더니 주차장으로 빠져나왔다. 그리고 커다란 밴 뒷자리에 신도를 강제로 태우고 양쪽에서 그를 붙잡았다. 잠시 후, 루이와 김박사가 나타나더니 각각 운전석과 조수석에 올라탔다. 루이는 황급히 차를 출발시켰다.

  저, 어디로 가는 거에요? 진짜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아저씨, 한국인 아저씨?

  김박사는 뒷자리를 돌아보며 물었다.

  도대체 당신 누구야? 기계라니, 무슨 소리야?

  아니, 그게 제가 만든 기계가 있는데…….

  당신은 보면 안 될 것을 봐버렸어. 이건 심각한 문제야. 일단 연구실로 가서 얘기하지.

  아뇨! 어디 가서 얘기 안할게요! 팔 뜯은 건 죄송해요!

  김박사는 더 이상 대꾸를 하지 않았다. 

  밴은 한참을 달려 파리의 교외 쪽으로 가더니 어느 큰 저택 앞에서 멈춰 섰다. 요원들이 신도를 끌어내리고, 김박사도 내렸다. 루이가 차를 주차장으로 가져가는 동안, 나머지 인원들은 신도를 끌고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신도가 계속해서 끌려가다가 마침내 멈춘 곳은 서재 같이 생긴 커다란 방이었다. 그리고, 그곳 책상에 나이가 많아 보이는 동양인이 한 명 앉아 있었다. 그는 신도를 보더니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다가왔다.

  너는 도대체…….

  그 역시 한국인인 모양이었다. 뭔 파리에 한국인이 이렇게 많은지, 신도는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거냐?

  그 남자는 마치 신도를 원래 알고 있었기라도 한 듯이 물었다. 신도는 뭔가 이상한 걸 느꼈지만 빨리 자초지종을 설명하지 않으면 문제가 더 커질 거라는 생각에 일단 자신의 목적을 먼저 얘기하기로 했다. 자기가 작곡 기계를 만들었다가 버렸는데, 그걸로 만든 것과 정확히 똑같은 멜로디의 곡을 다프트 펑크가 발표했다. 그래서 그 기계를 가져간 게 아닌가 싶어 여기에 왔다. 신도는 그렇게 간략하게만 설명했다.

  남자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그는 한 마디를 내뱉었다.

  우리는 그런 기계를 가져간 적이 없어.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완벽하게 똑같은 멜로디가 나올 수 있죠?

  그 기계를 네가 만들었으니까.

  신도는 남자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너를 내가 만들었으니까. 다프트 펑크처럼.

 

  신도는, 자기 귀를 의심했다.

  그게 무슨 소리에요?

  낙원상가 이전의 기억이 없지, 너?

  

  신도야. 도대체 그 동안 뭘 하고 산거냐? 

 

5장. 2007년, 낙원상가의 추억

 

  기억 못하겠지만, 내 이름은 신중원이다. 원래 한국에서 유명한 연예 기획사의 사장이자 작곡가였어. 언제나 최고의 아티스트를 발굴해내는 걸 목표로 하고 있었지. 그런데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나는 회의감을 느끼기 시작했어. 세상에 더 이상 새로운 음악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온갖 실험적인 사운드들을 시도해도, 어차피 음악이란 근본적으로 멜로디의 직조야.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멜로디를 만든다는 건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지. 그렇다면 좋은 멜로디의 조합이라는 건 어떤 공식으로 이미 정해져있는 게 아닐까? 스케일이라는 개념만 봐도 그렇지 않니. 나는 거기까지 생각이 이르자 결심을 하게 됐지. 그럼, 과학 기술로 최고의 아티스트를 만들어 내 보자고.

  모든 자본과 기술력을 총동원 해 만들어진 게 너였다. 로봇이라기보다는, 인간과 같은 생체 원리를 가진 인조인간이었지. 그렇기에 너는 몰랐을 거야. 인간과 똑같은 생리 구조로 살아왔을테니까. 만약 병원에라도 갔다면 의사는 뭔가 이상하다는 걸 발견했을 수도 있지만, 병원에 갈 일이 없었을 거다. 너는 완벽한 면역 체계를 가지고 있어서 보통 인간처럼 병에 걸릴 일은 없었거든. 다쳐서 외상을 입는 일은 있었을 수도 있지만, 외과 의학으로는 보통 인간과의 차이점을 발견해 낼 수 없었을 거야.

  물론 네가 인조인간이라는 건 원래 네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외부에는 철저하게 비밀로 부쳤지. 불법적인 과정이었지만 너는 나라에도 인적사항이 등록된 엄연한 시민이기도 했어. 음악적 능력은, 말할 것도 없었다. 내 가설이 맞았던 거야. 너는 수학적인 능력으로 인간이 가장 듣기 좋아하는 멜로디를 얼마든지 뽑아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쌓아둔 곡이 한 둘이 아니었고, 데뷔만 앞두고 있는 상황이었지. 전 세계를 놀라게 할 만한 인재였어.

  그런데, 네가 언제 갑자기 변심을 한 건지 모르겠다. 아마도 내 생각에는 라이브 클럽에서 밴드의 공연을 본 이후였던 것 같아. 나는 공연에 대한 감각을 심어주기 위해 밴드의 공연을 구경시켜줬지만, 그게 내 실수였지. 너는 그들이 부러웠던 거야. 비록 너보다 한참 모자란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은 어쨌든 자기가 머리를 싸매고 만든 곡을 발표해서 사람들에게 들려준 거니까. 그게 즐거워 보였던 거지.

  그리고 바로 그 날, 내가 너에게 새로운 악기를 사주기 위해 낙원상가로 데려간 날이었어. 따로 악기를 주문해서 너에게 쥐어줄 수도 있었지만 나는 네가 직접 악기에 대한 매력을 느끼고 고르기를 원했다. 비록 인조적으로 만들어졌다고 해도, 너는 로봇이 아니라 감정이 있는 인간이었으니까. 그 날은 다른 인원을 대동하지 않고 우리 둘이서만 외출을 했다. 그리고 너는 그 날을 노렸던 거야.

  어디서 났는지, 너는 상가의 외진 곳으로 나를 데려가 내 목에 칼을 겨누고 협박을 했다. 음악적 능력이고 뭐고 다 지워져도 좋으니, 한 명의 자유로운 인간으로써 살게 해달라는 요구였지. 하지만 넌 큰 오해를 했어. 난 너를 진심으로 아들처럼 사랑했다. 그렇게 협박을 하지 않아도 네가 진정으로 그런 삶을 원한다고 얘기했으면 네 부탁을 들어줬을 거야. 나는 일단 연구소로 돌아가서 초기화를 시켜주겠다고 했지만 넌 나를 믿지 않았어. 둘만 있는 그 자리에서 당장 해달라고 요구한 거지.

  나는 비상시를 대비해 항상 너와 연동시켜 새로운 정보를 입력할 수 있는 휴대용 컴퓨터를 가지고 다녔다. 너도 그걸 알고 있었고. 그래서 그 자리에서 바로 초기화 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어. 삶을 살아나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지식만 남기고 다 지워주기로 했다. 집은, 우리 연구원 중 한 명이 살던 집을 대신 내주기로 했어. 물론 그에게는 더 좋은 집을 주었고. 갑작스럽게 네 거처를 입력하려면 그 방법 밖에 없었다. 그 전까지 너는 나와 함께 살았으니까. 그리고 네가 앞으로 당분간 살아갈 수 있도록 일단 급한 대로 현금을 네 외투 안주머니에 넣어뒀다. 큰돈은 아니었지만, 네가 앞으로 네 삶을 개척하려면 적당한 액수가 나을 거라고 생각했지.

  문제는 가족에 대한 것이었어. 네가 탄생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리면, 당연히 네가 어디에서 왔는지, 너의 가족들이 누구인지 궁금해 하지 않겠냐?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한 생각은 네가 본능적으로 피하도록 설정해 두었지. 아주 안 좋은 기억처럼 남도록. 음악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네가 다시는 음악을 거들떠보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아서, 음악을 기피하게끔 만들었어. 하지만, 그건 우리 기술의 한계였던 것 같구나. 결국에 너는 음악으로 다시 돌아오고야 말았으니까. 그런데 그게 네가 직접 음악을 하는 게 아니라 우리처럼 새로운 기계를 만들어내는 방식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 일 이후 나는 회의감을 느꼈어. 하지만 내 꿈을 접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방식을 바꿨지. 음악적 능력은 그대로 살리되, 감정이 없는 로봇을 만들기로. 더 이상 한국에서는 작업을 하고 싶지 않았고, 프랑스로 와서 새로운 작업에 착수했어. 그렇게 만들어낸 게 다프트 펑크야.

  물론, 다프트 펑크는 원래부터 있던 듀오였다. 하지만, 그들은 세 번째 앨범을 낸 이후에 개인적인 사정들로 음악을 그만두게 되었어. 나는 그들이 활동 당시 고수했던 ‘로봇’ 컨셉에 주목했다. 그 컨셉을 이어나가는 명목이라면 사람들의 의심을 사지 않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 다프트 펑크 본인들은 당연히 처음엔 동의하지 않았어. 하지만 나는 다프트 펑크의 이름을 통해 얻는 수익 전체를 사회에 환원한다는 조건으로 간신히 동의를 얻어냈다. 애초에 나는 돈을 벌기 위해 이런 일들을 시작한 게 아니었으니까. 자금이라면 우리 연구진의 본업만으로도 충분히 조달할 수 있었다.

  본래 다프트 펑크가 공식석상 등에서 거의 본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이들이긴 했지만, 불가피할 때는 원래 멤버들이 도와주곤 했어. 많은 사람들이 최근 앨범이 이전까지의 다프트 펑크 음악들과 많이 다르다고 얘기하곤 했지만, 이러한 진실이 있을 거라고 까지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

  오늘처럼 콘서트를 하고 난 뒤에는 항상 물리적 정비를 한 번 거치는데, 김박사가 그 역할을 맡고 있지. 루이는 신입이라 김박사의 얼굴을 실제로 본 적이 없기에, 같은 한국인이란 이유로 네가 그 사람이라 착각했던 모양이다. 그런 오해들이 없었더라면, 이렇게 너를 다시 보지도 못할 뻔했구나.

 

종장. 모두 지옥에서 만나자

 

  그럼 볼프강 아마데우스는…… 진짜로 누가 엿 바꿔 먹었나.

  신도는 갑자기 궁금해졌다.

  왜 그러니?

  신박사가 그를 살피며 물었다. 신도는 고개를 저었다.

  신도는 의자에 앉아 머리에 패드 같은 걸 붙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패드에서 뻗어져 나온 전선은 신박사의 컴퓨터로 연결 되었다.

  정말로 괜찮겠니, 이렇게 해도?

  그럼요.

  신도는 신박사를 향해 웃어보였다.

  어차피 기억을 또 지워봤자, 어디 가서 음악이나 하겠죠. 이번엔 뭐 국악이라도 하지 않을까요.

  신박사는 고개를 떨구고 말했다.

  미안하다.

  마지막으로 부탁이 하나 있어요.

  뭔데?

  아예 말소 처리를 하기 전에, 꿈을 한 번 꿔보고 싶어요.

  꿈?

  왜 저는 남들처럼 꿈을 한 번 안 꿔보나 했는데, 보통 사람이 아니라서 그랬나 봐요. 그걸로 어떻게 해 줄 수 있지 않을까요?

  신박사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뇌파를 자극하면 가능할 것 같구나. 그런데, 꿈의 내용까지는 내가 어떻게 해줄 수 없어. 마지막으로 꾸는 꿈이 악몽이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려고?

  신도는 잠시 망설이다가 물었다.

  보통 사람들은 어떤 내용으로 꿈을 꾸죠?

  글쎄, 보통 제일 많이 생각하는 내용이 꿈에 나오지.

  신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괜찮을 거에요.

  신박사는 신도를 빤히 바라보았다.

  알았다.

  그리고 나서 그는 컴퓨터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신도가 물었다.

  박사님, 그런데 제 이름은 왜 신도라고 지으셨어요?

  신박사는 약간 당황하는 듯 했다.

  어, 그게…… 내 학창시절 별명에서 따온건데…….

  별명이 뭐였는데여?

  그…… ‘신또’라고…… 신중원 또라이라고 해서……

  …….

  모르는 게 나을 뻔했네요.

  자, 나는 준비 다 됐다. 너는?

  저도요.

  신박사는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그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잠시 후, 그는 큰 결심을 한 듯 엔터키를 눌렀다.

 

  신도는 병원 앞에 서있었다. 날씨는 아주 화창했고, 주변은 이상할 만큼 조용했다. 잠시 후 정적을 깨고 병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발레리가 나왔다. 퇴원을 하는 그녀의 모습은 아무데도 다친 적이 없었던 것처럼 멀쩡했다. 신도는 발레리에게 다가가 그녀를 말없이 안아주었다.

  발레리.

  신도가 그녀를 나지막히 불렀다.

  박선미라고 알려줬잖아.

  발레리가 좋아.

  신도는 포옹을 풀고 그녀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발레리. 나 인조인간이래.

  발레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잘 지내?

  난 지옥에 있어.

  신도는 놀랐다.

  왜? 네가 왜 지옥엘 갔어?

  그거야…… 비둘기도 죽이고 고양이랑 거북이도 죽였고……

  발레리는 머리를 긁적였다.

  뭣보다 메탈을 했으니까.

  신도는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지.

  근데 여기가 좋아. 맨날맨날 벌을 받기는 하지만, 듣자하니 천국에서는 CCM이나 부른대. 여기는 그래도 1주일에 한 번씩 락 페스티벌이 열리니까. 그 재미로 사는 거야.

  그럼 너도 무대에 서는 거야?

  발레리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멤버가 없잖아.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웃었다. 신도도 함께 웃었다. 발레리가 물었다.

  같이 서줄 거지?

  신도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불안한 표정이었다.

  근데, 나 사람이 아니라서 거기 갈 수 있을까.

  그 말에 발레리는 눈물을 글썽이더니 신도를 꼭 안아주었다.

  올 수 있을 거야. 너 착하잖아.

  신도도 발레리를 꼭 껴안았다. 그녀의 품은 지옥불만큼이나 따뜻했다.

   





오 용 택
베이시스트, 작가

1992년생. 밴드 '차세대'에서 베이스를 치고 있다.
가사를 쓰고 소설이나 수필도 가끔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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