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서울 도시 속 작은 페스티벌을 다녀오다 <엶 페스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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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노트: 서울 도시 속 작은 페스티벌을 다녀오다 <엶 페스티벌> 

Tommy Powell



엶 페스티벌이 개최되는 금요일이었다. 나는 수면 부족 상태로 하루종일 버티고 저녁까지 깨어 있는 데 성공했다. 따스한 맑은 날씨가 모두를 맞이했다. 

 

나는 페스티벌의 첫번째 개최 장소 '작은물'이 위치한 서울 중부 을지로로 이동했다. 

 

을지로! 다른 곳에서는 이미 몸집이 너무 비대해져 버린, 서울에 마지막으로 남아 숨쉬는 메아리. 

5층, 6층짜리 건물들이 그 열 배도 넘는 건물숲에 둘러싸인 채 당당하고 고집스럽게 서 있는 곳이다. 서울이라는 이 도시는 태양조차 앞지를 기세로, 끝없는 네온 불빛의 경주 속에 스스로를 상실하곤 하지만, 그런 이카루스적 어리석음 따위에는 아랑곳 않고 변함없이 맥동하는 서울의 진정한 심장이 여기에 있다. 


작은물의 입구!

 

어둡고 높은 계단으로 이어지는 작은 문간으로 들어가, 그 어둠 속으로 걸어오르며, 우측의 첫번째 문을 열었다. 잠겨 있었다. 아, 그럼 그렇지. 화장실이로군.  

 

조금 더 올라가서 우측의 또 다른 문을 열었다. 주황색 빛이 나를 비추었다. 

이곳이었다! 특이한 커플들이 자리를 잡은 몇몇 개의 테이블을 지나, 바(bar)가 있는 곳을 향해 걸었다.   

아, 토미! 안녕!

공간운영자 윤상이 나를 알아보았다.  

목소리를 낮추며 나는 답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디깅 닷 케이알'에서 취재 나왔습니다.”

“아, 디깅!”

 그는 내 어깨 너머를 보려고 잠시 용쓰다가 말을 이어갔다. 


“영상 촬영하러 온 거야? 누구랑 왔어, 아니면…?”

“아닙니다. 혼자 왔습니다.” 그러고서 나는 슬며시 덧붙였다. “저는 오늘 기자입니다.” 

“아… 아, 그렇군. 그래.” 윤상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대답했다. 


윤상은 창가에 가장 가까운 테이블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 앉은 손님 한 명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고맙다는 눈인사를 하고 그리로 향했다. 홀로 창가에 앉은 이 사내는 누구인가? 그의 이야기는 무엇일까? 나는 이 기사를 위해 어떤 이야기를 발굴해낼 참인가? 


기자라는 정체를 밝히는 것이 그를 불편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며, 테이블에 착석하여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토미입니다.” 쿨하게 한마디를 던지고서 능청스럽게 물었다. “말씀해주시죠. 이곳에 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내는 고개를 들고 즉시 만면에 미소를 띠었다. 그가 개방적이고 열린 마음의 소유자임을 알 수 있었다. 

 

“내 이름은 록커예요.”

 

록커! 그래, 과연 그럴싸했다. 레게 머리를 한 그의 태도는 자유분방했다. '록커'만큼 잘 어울리는 이름이 또 있었을까? 그가 윤상을 불러올 때까지 우리는 담소를 나누었다. 

 

‘“괜찮으시다면 막걸리 하나만 주시겠어요?”

 

기회를 놓칠세라, 나 또한 주문하였다. 


“막걸리 하나요.”

우리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가 페스티벌을 보기 위해 대구에서 왔다는 것을 들었다. 대구! 서울에서 몇백 킬로미터나 떨어진 완전히 다른 도시라니! 거기서 여기까지 그는 왜 왔단 말인가?

 

“나는 뮤지션인데, 대구의 음악 씬은 작거든요. 다른 뮤지션 친구들을 만나러 올 수 있을 때 서울에 올라오곤 하지요.” 


신빙성이 있는 주장이었다. 나 또한 대구에 방문한 적이 있었으며, 씬보다는 모노레일이 매우 인상적이었다고 기억했다. 

 

“어떤 음악을 하십니까?” 나는 그에게 물었다.

“디제리두(호주의 전통 악기, Didjeridu)를 연주하지요.” 

잠시 놀라서 멍하게 있다가 정신을 가다듬고 질문을 조금 더 던져보았다. 

 

알고 보니 그는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시간을 꽤 보냈는데, 동양인 디제리두 연주자로서 꽤 인지도도 있었고 친구도 많았다. 이 페스티벌은 대체 어떤 보헤미안적인 낙원이기에, 이토록 저명한 디제리두 연주자를 불러낼 수 있었던 것인가! 

“그쪽은?” 그가 물었다. “그쪽도 음악하세요?”

 

내가 두려워하던 바로 그 질문이었다. 나는 기자로서, 전문가로서! 작은물, 아니 엶 페스티벌에 출입하고 있었다! 내가 기자로서 이 일을 충실히 수행하려면 나는 나 자신이어서는 안 됐다. 나는 특종을 위한 마중물이며, 이 이야기의 집필과 무관한 정체성은 철저히 버려야 한다. 록커의 개방적인 태도와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 잠시 경계를 풀었다. 

“네, 그렇지만…”

 

아무도 듣지 않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보시다시피 이번 주말 저는 기자입니다. 저는 특종을 파헤치기 위해 이곳으로 온 것입니다.”

 

“아, 멋지네! 자주 글 쓰세요?”

피할 수 없는 질문이리라 예상했어야 했다.  


“...처음입니다만.” 

막걸리가 도착했고, 우리의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디제리두를 손에 든 채로 호주의 동부 해안선을 따라 자전거 여행을 다니다가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필리핀에 갇혀버렸던 남자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다. 이 페스티벌은 최소한 한 명의 자유로운 영혼만큼은 휘어잡았다.  

시간을 확인하기 전 우리는 밖에서 담배를 피며 잠시 서 있었다.

공연이 곧 시작할 참이었다. 

 

“먼저 들어가게나, 친구여.” 바를 향해 다시 가는 길에 내가 말했다.  

작은물은 두 개의 층으로 나뉘어 있는데, 윗층은 공연장소이고, 아랫층은 바이다. 


나는 막걸리 하나를 더 주문하고 윗층으로 올라갔다. 

 

본격적으로 페스티벌이 시작되기 직전 마지막 계단이다. 나는 과연 진정한 기자로 거듭날 수 있을까? 이미 한 차례 경계를 늦추고 이 친절한 록커에게 내 정체를 밝혀버렸던 터. 그러나 나는 이제 준비가 되어 있었다. 막걸리를 한 잔 움켜쥔 채, 페스티벌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다. 


길고 어두운 등반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15개의 계단일 뿐일지 몰라도, 그것은 일종의 '변신'이었다. 과거의 나를 허물처럼 벗어던지고, 내 주변과 내 감정에 날카롭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새로운 정체성을 향한 도약이었다.

정상에 도달하니 공연 공간의 입구가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좁은 입구였지만 그 안에는 문화적인 낙원이 담겨 있을 것이 분명하였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