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가온 - Fathers' Buffalo [EP]

디깅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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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로바이페퍼스'에서 솔로 아티스트 '김가온'으로.

그 새로운 시작,  <Fathers' Buffalo>.

발매를 맞이하여 뮤지션 '김가온'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김가온 EP [Father's Buffa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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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만나서 반갑습니다. 자기소개 간단하게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디깅매거진 독자 여러분! 이번에 EP <Father's Buffalo>를 발매한 김가온이라고 합니다. 



D SNS에서 사용하는 이름 'Kreix Kim'은 활동명인가요? 

'Kreis'는 독일어로 '원 Circle'이라는 뜻이고요. 인터넷 보급 초반, '나우누리'가 처음 나왔을 무렵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아이디예요.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요. 독일에 다녀온 뒤 Kreis를 Kreix로 바꿔 보았는데 마음에 들더라고요. 그 이름으로 음악을 해야겠다 생각했어요. 그래서 DJ로는 'Kreixkim'으로 활동하고 있구요. 솔로 아티스트로는 제 본명 ‘김가온’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D EP <Fathers' Buffalo>를 소개해 주세요.

'스스로의 자아를 지움으로써 스스로가 원하는 곳에 다다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만든 노래들입니다. 이번 앨범에서 저는 제 자아를 지우고 음악만 남기고 싶었어요. '김가온'이라는 자아를 지우다 보니 다양한 자신을 느낄 수 있었거든요. 남성과 여성, '종', '국가', '아버지', '어머니', '친구', '인간관계', 이런 것들에서 벗어나는 거죠. 시간, 공간, 물리적인 환경에서도 제약을 받지 않는, 아무래도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사고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이건 베를린에서의 영향이 큰데요. 세계 각지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제 정체성에 대해서 한번쯤 생각해 볼 수 있는 여건이 됐어요. 한국에서 살다 보면 드는 여러 생각들이 베를린에서는 의미가 없었어요. 자신을 속이지 않고 뚜렷하게 보고자 해서, 그때 저에 대해 좀 진지하게 생각해 봤어요. 어떤 '경계'라는 게 무너지더라고요. 다양한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국가’의 희미해 지는 것이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 모두는 우주인이 아닐까? 다만 나중에 선을 긋고 갈라진 것 아닐까? 싸우지 않고 똑같은 우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어요. (웃음) 이렇게 경계가 모호해지고 허물어지다 보면 좀더 영적으로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인간은 계속 진화를 해 왔잖아요. 퇴화되는 부분도 있고요. 사람이 다음 진화를 하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도 신체적인 발달보다 영적인 진화가 나타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과정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예를 들어 텔레파시를 쓰거나 할 수도 있겠죠? 하하.



D 이번 앨범 'Father's Buffalo'는 어떤 식으로 작업했나요? 

본가인 광주에서 모든 곡을 작업했어요. '로바이페퍼스'가 해체하고 '나 혼자 어떤 음악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이제 정말 모든 과정을 혼자 해야 된다는 무거운 마음이 들었어요. 한편 밴드라는 포맷의 제약이 없어지니 제 마음대로, 하고 싶은 대로 모든 악기 구성을 만들어볼 수 있었어요. 일단 아무렇게나 해보자, 해서 만들게 됐죠. (웃음) 열 세 곡 정도 스케치가 나왔을 때 무작정 곡을 들고 서울에 올라왔어요. 스케치한 곡들 중 마음에 드는 다섯 곡을 추려서 EP를 내보자고 결심했죠. 시퀀서 '에이블톤 Ableton'으로 최종 믹스까지 셀프로 진행했어요. 마스터 작업은 EJO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D 2년 정도 독일에서 활동을 하셨는데, 많은 것들을 느끼고 오신 것 같아요. 에피소드를 들을 수 있을까요?

제가 춤 추는 걸 안 좋아했는데, 독일 클럽 문화에 빠졌어요. 음악을 들으면서 자유롭게 춤을 추는 게 즐거워졌고 음악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았어요. 몸치라서 대단한 춤을 추는 건 아니지만 춤을 춘다는 행위로 음악을 바라보는 시야가 많이 넓어진 것 같아요.

'로바이페퍼스' 이야기를 하자면 한국에서처럼 관객 2-3명 앞에서 공연을 시작했어요. 첫 공연 이후 다시 처음부터 시작이구나 라는 것을 실감했죠. 그런데 꾸준히 활동하다 보니 차츰 밴드가 커져 나가더라고요. (웃음) 저희가 투어를 직접 준비해서 주변 나라를 돌았는데, 폐기차역에서 공연을 한 적이 있었어요. 지역 마을 사람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랑 꼬마 아이들이 저희 음악을 듣고 '재밌는 거 하네~' 하면서 감상하더라고요. 한국에는 공연을 가면 대부분 연령대가 한정적이었던 것 같은데,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와 즐기는 축제에서의 공연은 다른 공연보다 기억에 남아있네요.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공연을 하고 공연장을 운영하는 친구의 잠을 자곤 했는데, Viechtach에서는 Oli의 성당을 개조한 듯한 카페에서 공연을 했었어요. 이날도 올리의 집에서 자게 됐는데 그날 밤 10초마다 별똥별이 떨어져서 다음날 일정이 있었는데도 멤버들이랑 쏟아지는 별들을 보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던 게 기억에 남아요.



D 독일의 뮤직 씬은 어떤 느낌이었나요?

인디 음악 문화가 건강해요. 실험적인 음악부터 재즈까지 다양한 공연들이 작은 클럽이나 바, 전시장에서 엄청나게 많이 이루어져요. 거리에는 길거리 아티스트들이 많고요. 공연장에는 어느 정도의 사람들이 매일 밤 공연을 즐기고 맥주를 마시는 문화가 보편화되어 있어요. 밴드가 돈을 많이 벌지는 못하지만, 공연 수익이 그리 적지는 않아요. 그리고 역시 테크노, 일렉트로닉 장르에서는 사운드적 다양성이나 귀의 즐거움의 차원이 달랐어요. 그리고 독일도 메인스트림은 힙합이에요. 패션 브랜드 FILA가 대표적으로 힙한 브랜드고요. 하하. 전반적으로 다양함에서 오는 느낌들이 참 좋았달까요.


D DJing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처음 Berghain 이라는 클럽에서 놀던 날 인파속에서 디제이 부스를 봤을 때 ‘나도 저기 서보고 싶다!’라고 생각했던게 시작이었어요. 한국으로 돌아오고 난 후 DJing 장비를 사고 집에서 독학을 했어요. 유튜브와 사운드클라우드에 제 믹스를 올려 놓았고요. 테크노 DJ 친구들이 음악을 들어보더니 종종 저를 불러주고 있어요. 앞으로도 계속 DJ 활동을 이어나갈 예정이에요.


D 리스너들이 <Fathers' Buffalo>를 감상할 때 어떤 부분을 염두에 두면 좋을까요?

삶이 모두에게 다르겠지만 대부분 도시의 삶은 긴장, 주의, 위협, 서둘러야 하는 마음, 스트레스 이런 것들이 지속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내가 없는' 음악, 즉 음악의 주체가 없는 상황에서 리스너가 음악을 들었을 때 리스너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 싶었어요. 마음을 편안하게 하시고 쉬어가시면서 들으셨으면 좋겠어요.


D 마지막으로 디깅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 부탁드립니다.

밴드를 하다가 처음으로 솔로 데뷔를 하게 됐어요. 저의 음악적인 모험을 지켜봐 주세요! 편안하게 인터뷰한 만큼 독자 분들도 편하게 글을 즐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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